먹을 것인가, 참을 것인가…외식과 다이어트의 미시사

신간 '외식의 역사'·'다이어트의 역사'

김계연

| 2022-02-07 16:30:12

▲ 고든 램지 버거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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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인가, 참을 것인가…외식과 다이어트의 미시사

신간 '외식의 역사'·'다이어트의 역사'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역사학자 존 버넷은 "당신이 어디서 먹는지 말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외식을 하는 이유는 배고픔이라는 생리적 문제 해결을 넘어선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곳에 머물기만 해도 즐겁다는 생각에 맛집을 찾는다.

영국 음식작가 윌리엄 시트웰의 '외식의 역사'는 고대 로마부터 오늘날 완전 채식주의에 이르기까지 2천년 넘는 인류의 외식문화 변천사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고대 폼페이의 식문화에서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발견한다. 폼페이 중심가인 델라본단자 거리에는 레스토랑과 술집이 즐비했다.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파티를 열었고, 네로 황제도 즐겨 찾았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레스토랑과 숙박을 겸한 시설에서 피자와 와인을 즐겼다.

프랑스 혁명은 고급 레스토랑을 크게 늘렸다. 귀족의 저택에서 음식을 만들어주다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요리사들은 집사·하녀들과 함께 파리로 몰려가 레스토랑을 열었다. 고급 레스토랑을 옮겨 다니며 맛과 식사 예절에 정통한 부르주아 미식가들이 이때 생겨났다.

요리사 모자를 만들고 음식을 차례로 차려내는 오늘날 코스 방식을 개발한 마리 앙투안 카렘, 타코 기계를 발명해 패스트푸드 열풍을 일으킨 후벤시오 말도나도, 초밥 컨베이어벨트를 개발한 시라이시 요시아키 등은 외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2003년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였던 베르나르 루아조는 쏟아지는 혹평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늘날 셰프의 요리는 예술로 승화했지만, 미슐랭 가이드로 대표되는 권력 앞에서는 더 높은 별점을 얻기 위한 무한경쟁만 남는다.

저자는 "레스토랑이 레저산업에 편입되는 사이 레스토랑의 존재 이유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며 한 평론가의 말을 빌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는 식욕이 있어서이고, 식욕은 배고픔과 다르다."

한 손에 다이어트 콜라, 다른 손에 고지방 햄버거를 든 현대인의 역설은 다이어트를 일상이자 종교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개발된 다이어트 방법만 3만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일본 저술가 운노 히로시는 최근 국내에 번역·출간된 '다이어트의 역사'에서 "다이어트는 근대적이고 여성적이며 미국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 시대에도 대식가를 죄인으로 여겼지만, 과도한 쾌락을 경계하라는 주문이었을 뿐 마른 몸매를 이상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근대 이전까지 다이어트는 오히려 남성의 문제였다. 너무 살이 찌면 갑옷을 입을 수 없고 군인이자 남성으로서 체면이 깎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개념의 다이어트가 등장한 때는 19세기 후반이다. 필요한 양보다 많이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살찐 사람을 경멸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1900년께부터 미국 곳곳에 체중조절을 위한 체육교실이 문을 열었고 신문에 살 빼는 약 광고가 실렸다.

저자는 이같은 변화에 넓은 영토가 한몫했다고 본다. 자가용이 보급되기 전 미국 사람들은 주로 통신판매로 옷을 사 입었다. 그러나 옷의 특성상 분쟁이 많이 발생했고, 업체들은 사이즈 기준을 정해 옷을 만들었다. 저자는 "기성복을 구매한다는 건 대형 의류회사와 백화점 등이 정한 사이즈 체계에 편입된다는 뜻"이라며 "사람들은 몸매 줄 세우기에 싫든 좋든 순응해야 했고, 살찐 몸인지 아닌지를 가치 체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한다.

전쟁은 비만을 도덕의 문제로 치환하고 다이어트 문화에 불을 붙였다. 전시배급이 이뤄지면서 뚱뚱한 사람은 비애국자로 매도당했다. 건강한 식생활은 애국자의 의무가 됐고 '군대식 다이어트'가 유행했다.

매스미디어와 다이어트 산업이 마른 몸매를 향한 강박을 부추긴 끝에 거식증이 새로운 질병이자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이어트는 더이상 수단이 아닌 목표로 여겨지기도 한다. 저자는 "다이어트 열망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생활양식이 아니고, 보편적이라기보다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이라며 "우리는 왜 먹는지, 왜 다이어트를 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한다.

▲ 외식의 역사 = 소소의책. 문희경 옮김. 312쪽. 2만8천원.

▲ 다이어트의 역사 = 탐나는책. 서수지 옮김. 329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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