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연
| 2026-08-13 16:29:52
(서울=연합뉴스) 양수연 기자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1996년 연세대학교에서 통일대축전을 열며 벌인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다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1996년 연세대 통일대축전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진상조사를 위한 피해자 모임'은 1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총련 연세대 사태'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한다고 밝혔다.
이번 신청에는 당시 57개 대학 소속이었던 197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이 사건은 오직 당시 행사의 실정법 위반과 폭력성만이 부각돼 왔으나, 정작 진압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공적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행과 구금 과정에서의 폭력, 여학생들에 대한 성추행이 있었다는 증언이 30년째 방치돼 왔다"며 이에 대한 진실화해위의 직권조사를 요구했다.
진상 조사를 통해 집회의 자유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열리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이들은 "향후 정부를 상대로 한 집회·시위에 있어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범위를, 그간 이뤄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 수준에 맞게 재조명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경희대 총학생회장이었던 피해자 모임의 김종욱 간사는 지난 5월부터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진실규명 신청에 동참할 당시 시위 참여자들을 모아왔다.
이는 2기 진실화해위의 조사 범위가 권위주의 통치(노태우 정부) 시까지였던 것과는 달리 3기 진실화해위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시기인 2001년 11월 25일까지 조사할 수 있도록 과거사정리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김 간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국사건이었음에도 당시 언론 보도는 시위의 폭력적인 부분이나 친북적인 것들을 부각했을 뿐 냉철하게 이 사건이 왜 그렇게 크게 벌어졌는지 한 번도 조사해보거나 공론화된 적 없었다"며 "그 과정을 알고 조사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총련 연세대 사태는 1996년 8월 12일 오전 11시 30분께 대학생들이 통일대축전 개최 장소인 연세대 정문 앞에서 정부의 집회 불허에 항의해 화염병을 던지는 것으로 막이 올라 9일 동안 계속됐다.
당시 경찰은 헬기 11대를 띄우는 등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다.
이 사건으로 5천848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이 가운데 462명이 구속, 3천341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단일 사건으로 최대 규모의 연행자가 나왔던 사건이다.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가 옥상에서 던진 보도블록에 맞아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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