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상
| 2026-06-30 16:22:28
유네스코 유산도 예외 없었다…공습에 부서진 이란 유적
"문화유산 '타격 금지' 국제 규범 무시된 듯"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 '페르시아의 후예' 이란은 중동에서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27건)이 가장 많을 만큼 역사 유적과 문화재의 보고다.
통상 전쟁 중이라도 국제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받은 유적은 공격 표적에서 제외되지만 이번 중동 전쟁에선 이런 규범은 적어도 미필적 고의로 무시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이 거세졌던 올해 3월 하순 이란 당국의 이례적인 허가를 받아 이란 중부 역사도시 이스파한과 수도 테헤란의 파괴된 유명 유적을 직접 방문해 취재한 결과를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로이터 취재진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을 포함해 모두 11개의 역사적 건물이 피해를 본 사실을 확인했다.
'세상의 절반'이라고 불릴 정도로 이스파한을 대표하는 유적 나크쉐자한 광장과 그 주변에 있는 체헬 소툰 궁전도 그중 하나였다. 이 매체는 이들 유적이 직접 폭격당하진 않았지만 원래 표적이던 이스파한 주청사에서 2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탓에 폭격의 충격파가 이들 유적을 흔들었다고 전했다. 폭격의 충격파는 1㎞ 거리의 구조물도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로이터는 "지난 20년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상전과 공중전을 벌이는 동안 유네스코에 등재된 문화유산이 이처럼 훼손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유네스코는 아직 이란에 조사단을 파견하지 못한 채 위성 이미지로 피해를 평가하고 있다. 이 기구는 현재까지 이란 내 유네스코 세계유산 2곳, 국가적으로 중요한 문화재 4곳, 종교 유적지 1곳을 포함해 총 7개 유적지의 피해를 검증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로이터에 "전쟁 전이나 도중에 어떠한 사전 협의도 받지 못했으나 '분쟁의 모든 당사자'와 주요 유적지의 좌표를 공유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표적 인근에 '타격 금지 목록'이어야 할 세계적 문화유산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군은 이스파한 폭격에 대해 "국제법에 따라 행동하며 군사적 목표물만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일축했고 애나 켈리 미 백악관 대변인도 "이란이 절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핵심 목표에 맞춰 작전이 설계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로이터는 중동 고고학, 유적지 보존 전문가 8명과 인터뷰를 통해 "미군의 표적 선정 방식과 우선순위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역사적 명소를 보호하는 조치로부터 명백히 변화했다"고 짚었다.
미 공군 표적 분석 전문가였던 웨스 브라이언트는 "유적지 내부나 인근에 폭탄을 투하하려면 군인의 생명 보호와 같은 강력한 군사적 필요성과 함께, 때로는 백악관 수준의 고위급 승인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1954년 체결된 헤이그 조약에 따르면 무력 충돌 시 민간 문화재를 고의로 표적 삼는 것은 국제법상 전쟁 범죄로 간주하고 문화재 인근을 공격할 때는 문화재가 입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면밀히 평가해야 한다.
미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의 이슬람 미술·건축학 교수인 스테판니 멀더는 20여년 전 이라크 전쟁을 언급하며 "당시도 파괴적이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모든 규제가 풀려버린 지금 상황에 비하면 차라리 황금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란 문화재에 대한 미국의 관점은 지난 4월 이란이 종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란의 문명 전체가 멸망할 것"이라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위협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테헤란 골레스탄 궁전에서 30년간 근무한 한 고고학 담당 직원은 "공습 다음날 아침 궁전에 들어왔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 유리 파편들 사이에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며 눈물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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