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4-14 16:16:30
"사진과 회화 사이에서 카메라로 쓰는 시"…이정진 개인전
아이슬란드 풍경·일상 사물로 '보이지 않는 것' 탐구
英 FT 전면 소개·가디언서는 별 4개 받아…국제적 주목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제 작품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 있어요. 사진으로 시를 쓴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중간에 있는 제 작업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어요."
명상적인 사진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사진작가 이정진(65)의 개인전 '언신/씽'(Unseen/Thing)이 오는 15일부터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작가는 주로 감각적인 풍경을 카메라로 붙잡는다. 이후 한지에 붓으로 감광 유제를 바른 뒤 그 위에 인화한다. 이를 다시 디지털화하고 보정을 거쳐 프린트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의 작품은 수묵화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의 연작 '언신'은 아이슬란드의 자연을 포착한 작업이다. 매 순간 변화하는 날씨와 역동적인 공기, 거친 파도를 기록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많은 작가가 아이슬란드를 담는 작업을 해 저는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을 했다"며 "두려울 정도로 강한 아이슬란드 자연의 에너지와 내가 만나는 지점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대표 작품은 '언신 #55'다. 아이슬란드의 절벽 난간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찍었다. 바다와 땅이 맞닿아 거품이 이는 경계를 기록한 사진이다.
지난해 6월 작가는 영국 런던 헉슬리 팔러 갤러리에서 언신 작품들을 소개하는 전시를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시를 소개하며 이 작품을 주말판 전면에 실었다.
그러면서 "이정진은 자연 세계를 심리적인 어떤 것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며 "이는 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일간 가디언도 그의 전시에 별 4개(5개 만점)를 주고 "극적인 풍경에 장대한 문학적 성격과 인간 감정의 전 범위를 녹여냈다"며 "음울하고 두려우며 자연의 우위를 포효하듯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작가는 "절벽 난간에서 앵글을 잡았는데 안개도 많이 끼고 눈도 오면서 시야가 흐려 한참을 머물렀다가 찍은 사진"이라며 "지금은 이걸 어떻게 찍었나 싶은데, 좋은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시에서는 풍경을 주로 촬영하는 작가의 유일한 스튜디오 사진 작업인 '씽' 연작도 걸렸다. 머그잔이나 숟가락, 도자기 등 작가가 자기 공간에 놓여 있던 일상의 소박한 사물들을 촬영한 작업이다.
작가는 어느 날 깊은 명상을 한 뒤 눈을 떴을 때 책장에 놓인 토기를 보게 됐다. 그 순간 토기가 기능적 역할을 벗어나 형태 자체의 본질로 다가왔고, 이를 사진으로 옮겼다.
이후 작가는 사물과 긴 시간을 공유하며 관계를 맺고, 사물이 표면을 걷어내고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때가 됐다고 직감하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여백 위 섬세하게 배치된 정물들은 본래의 용도나 관념에서 벗어나 고유한 영혼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작가는 "물체의 디자인이나 기능과 같은 껍데기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 했다"며 "물건에 스며든 사용자의 흔적 같은 기운을 찾아 촬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정진은 홍익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했지만, 도예보다는 사진에 열중했다. 1988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고, 현대 사진 거장 로버트 프랭크의 제자이자 조수로도 활동했다.
미국의 사막을 촬영해 한지에 인화한 '미국의 사막' 시리즈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2011년에는 분쟁 지역의 균열과 모순을 기록한 국제 사진 프로젝트 '이스라엘: 진행 중인 초상화'에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함께 참여했다.
2016년 스위스 빈터투어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고, 그 순회전이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도 열렸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파리 국립현대미술기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세계 유수 기관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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