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딛고 종주국 온 우크라 태권도가족 "우린 포기하지 않아요"

태권도 꿈나무 남매, 매니저인 아버지와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참가
고국 태권도장은 피난민에게 제공…코치와 원격훈련하며 대회 준비

배진남

| 2022-04-21 16:11:53

▲ 태권도품새대회 참가한 '우크라이나 남매'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우크라이나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 남매가 남녀 페어 경기에 출전해 절도있는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2022.4.21 kimb01@yna.co.kr
▲ 손잡는 '우크라이나 가족'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우크라이나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 남매가 남녀 페어 경기에 출전하기 앞서 기도하고 있다. 오른쪽은 매니저인 아버지 루슬란 하브릴로프(43)씨. 2022.4.21 kimb01@yna.co.kr
▲ 태권도품새대회 참가한 '우크라이나 남매'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우크라이나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 남매가 남녀 페어 경기에 출전해 절도있는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2022.4.21 kimb01@yna.co.kr
▲ 한국식 인사하는 우크라이나 남매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1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서 우크라이나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 남매가 남녀 페어 경기에 출전해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은 매니저인 이들의 아버지 루슬란 하브릴로프(43)씨. 2022.4.21 kimb01@yna.co.kr
▲ 기자회견 후 포즈를 취한 '우크라이나 태권도 가족'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루슬란 하브릴로프 우크라이나 대표팀 매니저의 휴대전화. [세계태권도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쟁 딛고 종주국 온 우크라 태권도가족 "우린 포기하지 않아요"

태권도 꿈나무 남매, 매니저인 아버지와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참가

고국 태권도장은 피난민에게 제공…코치와 원격훈련하며 대회 준비

(고양=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고통받는 가운데서도 종주국에서 열린 태권도 대회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가족이 "우리는 강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우크라이나는 21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막한 2022 고양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에 선수 2명과 감독 겸 단장인 매니저를 포함해 총 3명으로 꾸려진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한 가족이다. 남녀 선수인 다비드 하브릴로프(14)와 예바 하브릴로바(12)는 남매이며 매니저 루슬란 하브릴로프(43)씨가 둘의 아버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회에 참가하지 못할뻔했던 이들은 폴란드를 거쳐 힘들게 지난 18일 방한할 수 있었다.

루슬란씨는 이날 대회장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선 "종주국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돼 영광이고 조직위원회에 감사드린다"고 인사부터 했다.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태권도장을 운영 중인 루슬란씨는 현재 아내와 셋째 아이는 집에 남아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애초 6명의 선수가 이번 대회에 출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이들만 한국 땅을 밟게 됐다. 코치도 징집대상자여서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못했다.

루슬란씨는 자신은 세 자녀 이상 다자녀가구라 징집령을 피해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훈련했던 선수들은 전쟁 때문에 모두 집을 버리고 피난을 떠났다"면서 "우리 트레이너는 폴타바에서 800㎞ 떨어진 오데사에 있다. 우리 아이들은 줌을 통해 원격으로 훈련해 왔다"고 그동안의 사정을 들려줬다.

애초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지난 2월 말 크로아티아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회 이틀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고, '포탄이 떨어지고 있으니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고 고국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루슬란씨는 "우리의 기회도 모두 날아갔다. 3월에 우크라이나에서 열릴 대회도 치르지 못했다. 이번 한국 대회 출전도 물거품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지역은 러시아 포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면서 "우리 가족은 집에 남기로 했다. 전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우리가 운영 중인 태권도장을 내주고 숙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 출전하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면서 "공항이 폐쇄돼 자동차로 30시간이 걸려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간 뒤 한국에 올 수 있었다"며 세계태권도연맹(WT) 등 도움의 손길을 내민 곳에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루슬란씨는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기량을 보여 줄 기회를 얻었다"면서 "승리를 확신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이다"라고 힘줘 말하기도 했다.

어린 남매들도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지켜봤다.

"도장에서 청소 등을 하며 피난민들이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왔다"는 다비드는 "전쟁으로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은 분들이라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난민들이 도장에서 지냈지만, 우리 도장에는 특별한 방이 하나 더 있었고 거기서 원격으로 훈련했다"고 했다.

이어 "전쟁 중이라는 힘든 상황에서 대회에 참가했는데 우리는 예전부터 국제대회에 서고 싶었다. 우리 실력을 증명할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태권도 선수들이 국제무대에서 노력하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우크라이나 민족이 강하고 용맹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남매는 7년 정도 태권도를 수련했다고 한다. 품새 선수가 되기로 한 것은 2년 전쯤이다.

남매는 대회 첫날인 21일 유소년부(만 12∼14세)의 페어(2인조) 경기에 함께 출전해 13개 팀 중 7위를 차지하고 8명에 겨루는 결승에 올랐다. 결승은 22일 열린다. 에바는 22일 유소년부 여자 개인전도 뛴다. 23일에는 다비드가 유소년부 남자 개인전에 나선다.

다비드는 "내일 결승 경기에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보여주고 1위라는 성적을 내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하자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자. 반드시 꿈은 이뤄진다"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루슬란씨는 예바가 말하는 동안 새가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하는데 개구리가 끝까지 살아남는다는 내용의 우크라이나 옛이야기의 그림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보여줬다. 예바는 "우크라이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24일까지 열리는 이번 대회를 마치면 세계태권도본부인 국기원 등을 방문하고 26일 출국할 예정이다. 일단 폴란드로 가서 다시 차량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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