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 2026-09-17 16:05:16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1.5세대 동포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현지 문화와 정서의 이해자이자, 한국의 자원과 현지 수요를 잇는 최적의 민간 외교관입니다."
지난 10일 열린 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 제18회 발표회 참석 차 한국을 찾은 레바논 차세대 동포 김연주(30)·지수(26) 자매는 1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지닌 경쟁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2000년 요르단으로 이주한 자매는 2008년 레바논에 정착했다. 베이루트아메리칸대(AUB)를 졸업한 언니 연주 씨는 코로나19 시기 세종시 KDI국제정책대학원 진학을 위해 귀국해 현재 아랍어·영어 프리랜서 통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동생 지수 씨는 레바논에 거주하며 AUB에 재학 중이다.
언니 연주 씨는 자신을 "한국인과 레바논인 어느 한쪽의 정체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제3문화권 장기 거주자'(TCK·Third Culture Kids)이자 1.5세대 동포"라고 소개했다. 부모를 따라 어린 나이에 해외로 이주해 성장한 이들을 흔히 1.5세대라고 부른다.
그는 3개 국어 능력과 한국인 정체성을 함께 지킬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가정과 한글학교, 현지 학교를 꼽았다.
부모가 집에서는 한국어만을 쓰도록 교육한 면도 있었지만, 부모가 현지어에 능숙하지 않아 가족 간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이뤄졌고, 성경 독서와 한국 음식을 통해 우리말과 문화를 일상에서 익혔다.
주말마다 다닌 한글학교도 정체성을 지키는 버팀목이었다. 요르단에서는 학년별로 반이 편성될 만큼 학생이 많았지만, 한인 가정이 40∼50가구에 불과한 레바논에서는 전교생이 10명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매주 한국어와 역사, 한자를 배우고 친구·교사들과 한국 음식을 나눠 먹는 시간은 한국인이라는 유대감을 이어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가장 역설적인 요인은 현지 학교 교육이었다. 국제학교가 아닌 아랍어권 현지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아랍어를 먼저 익혔고, 이후 영어와 한국어까지 3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됐다.
지수 씨는 세 살 무렵 현지 학생만 다니는 시골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 어머니를 찾으려고 주변 아이들을 따라 아랍어로 "마마"를 외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생존을 위해 아랍어를 배운 셈"이라며 "학교에서 언어와 문화를 몸으로 익힌 경험이 현지인과 소통하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밑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반면 처음부터 영어권 국제학교에 다닌 일부 동포 자녀는 아랍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구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자매는 전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차별과 학업의 어려움은 만만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과 중동을 연결하는 독보적인 언어·문화 역량을 갖추게 됐다는 설명이다.
지수 씨가 체감한 중동의 한류 열기도 10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 그는 "과거에는 현지인들이 '중국인이냐'고 묻거나 남한과 북한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지만, 5년 전부터 K팝과 한국 드라마가 확산하면서 현지 분위기도 빠르게 바뀌었다"며 "이제는 현지인들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한국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고 전했다.
특히 지수 씨가 지난 7월 개설한 인스타그램 계정은 약 두 달 만에 팔로워가 5만900명을 넘어섰다. 한국인이 아랍어로 현지 일상을 소개하는 모습에 "AI가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질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그는 레바논 유력 방송 알자디드 TV에도 출연했다. 현지 방탄소년단(BTS) 팬 행사에서는 참가자들이 지수 씨가 인스타그램 영상에서 사용하는 인사말인 "안녕하세요"를 한국어로 함께 외치기도 했다.
K뷰티와 K푸드도 K팝에 관심이 적은 성인과 남성층까지 끌어들이며 한류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지수 씨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갑자기 스타가 된 기분"이라며 웃었다.
연주 씨는 중동의 한류를 지속 가능한 교류로 발전시키려면 현지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차세대 동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장기 거주 동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국내 기관·기업과 현지 인재를 연결하는 매칭 플랫폼을 정례화하고, K종이접기(Korea Jongie Jupgi) 등 K콘텐츠의 교육 활용과 사업화를 지원해 차세대의 자립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자매는 또 "재외동포청의 '차세대 동포 모국 초청 연수'를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됐으며 모르고 있는 차세대들이 많다"며 재외동포청과 공관, 한인회, 한글학교를 잇는 홍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종이접기 강사 자격증을 준비 중인 지수 씨는 앞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레바논 한글학교, 현지 학교를 통해 종이접기 등 K문화를 적극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주 씨는 "전 세계에 있는 한글학교가 주말 학교를 넘어 교육과 문화, 비즈니스 기회가 모이고 청년의 미래를 만드는 지속 가능한 글로벌 허브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글학교 출신 학생들이 장차 교사와 민간 외교관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체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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