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6-11 15:55:58
금빛으로 채운 염원…황룡사 목탑 아래 펼쳐진 '부처의 세계'(종합)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특별전 12일 개막
최근 조사·연구 성과 공개…보물 '찰주본기' 사리함 등 322점 모아
탑에 얽힌 9가지 이야기…'김충' 등 작업자 추정 4명 이름 새로 확인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황룡사(皇龍寺)는 신라 불교의 중심이었다.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나라를 대표하는 사찰로 우뚝 섰고, 선덕여왕(재위 632∼647) 대에는 당대 최고 기술을 동원해 9층 목탑을 세웠다.
그 탑 아래 가장 깊은 곳에 놓인 건 사리였다.
부처의 존재와 가르침을 상징하는 사리는 보관하는 공간도 중요하게 여겼다. 경문왕(861∼875)은 목탑을 보수하면서 사리와 사리갖춤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주춧돌 구덩이 안에 금과 은으로 만든 고좌가 있고, 그 위에는 사리 유리병이 봉안돼 있었는데, 그 물건이 불가사의했다." (황룡사 '찰주본기' 중에서)
1천300년 전 신라인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완성한 '부처의 세계'가 드러난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을 맞아 이달 12일부터 선보이는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 황룡봉불(皇龍奉佛)'에서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전시 개막을 앞두고 11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최근 조사와 연구를 통해 밝힌 성과를 9가지 이야기로 풀어낸 자리"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신라의 3대 보물'로 꼽히던 목탑의 흔적을 쫓으며 시작된다.
탑의 중심 기둥이 놓였던 심초석(心礎石)에는 사리와 각종 공양물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둔 공간, 즉 사리공(舍利孔)이 남아있다.
사리공 내부는 환한 금빛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최근 조사 결과, 사리공 내부를 금동 판으로 꾸며 하나의 거대한 사리함처럼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벽면을 채운 금동 판은 목탑을 창건한 645년에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4년 도굴로 인해 유물 곳곳이 훼손되고 조각났으나, 박물관은 약 5년간의 보존 처리와 복원 작업을 거쳐 정확한 구조와 배치 방향을 밝혀냈다.
신명희 연구사는 "기존에는 찰주본기(보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가 새겨진 사리함과 세트일 것으로 봤으나, 각각 봉안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찰주본기는 4장의 금동 판을 연결해 만든 상자 형태의 사리함이다.
표면에는 총 74행, 900여 자가 새겨져 있는데 872년 황룡사 목탑을 중수하면서 남긴 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어 가치가 크다.
그간의 조사 성과를 종합하면 황룡사 목탑 아래 공간은 645년 내부를 금동 판으로 장식했고, 227년이 지나 사리함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리를 봉안하는 행위가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이어진 셈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이름을 찾아낸 점은 의미가 크다.
박물관은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판을 분석해 뚜껑과 바닥으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김충'(金忠), '연장'(連長) 등 4명의 이름을 새롭게 찾아냈다.
신 연구사는 이름 앞에 새겨진 '누'(鏤) 자를 언급하며 "'누'는 금속에 조각하거나 새긴다는 뜻으로, 무늬를 조각한 장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새로 파악된 이름을 포함하면 찰주본기 기록에서 확인되는 사람은 61명에 이른다.
박물관은 "황룡사의 목탑 중수는 왕실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와 장인이 함께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사리갖춤 혹은 사리장엄구라는 단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황룡사 목탑 아래에서 찾아낸 사리 관련 유물을 포함해 총 322점과 사리함 봉안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영상이 함께 공개된다.
사리함의 모습을 재현한 복원품, 사리공 내부를 표현한 추정 그림도 도움이 된다.
1978년 심초석을 들어낸 뒤 찾아낸 금동 귀걸이, 청동 가위, 유리구슬, 뚜껑이 있는 백자 항아리 등의 유물은 시선을 끈다.
전시에서는 통일신라의 다양한 사리갖춤도 다룬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의 삼층석탑 안에 있었다고 전하는 사리 항아리는 9세기 중엽 신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유물로, 1966년 도굴됐다가 되찾은 것이다.
몸체에는 가로, 세로로 칸을 내어 7자씩 총 38행의 글자를 새겼는데 항아리가 민애왕(재위 838∼839)을 위해 건립된 석탑과 연관돼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시에서는 납석으로 만든 항아리와 금동 사리함을 처음으로 함께 선보인다.
합천 해인사 일주문 인근의 3층 석탑에 봉안돼 있던 탑지석(塔誌石·탑의 건립 이유 등을 기록한 돌), 높이가 7.5㎝에 불과한 작은 탑 157점 등도 눈길을 끈다.
윤상덕 관장은 "신라가 남긴 기록과 유물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 따라가며 신라 왕실이 염원했던 불국토(佛國土)와 국가적 의례를 살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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