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지우고 '그리기'만 남겼다…연필선 쌓아 빚은 차영석 추상

닥종이 위 무한 반복 손놀림…"그리기 자체를 그려보고 싶어"
추상 연작 '스머지' 35점 출품…이화익갤러리서 내달 14일까지

박의래

| 2026-07-20 15:59:52

▲ 전시 전경 [이화익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차영석 2019년 작 '언 엘리전트 엔데버_152' [이화익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차영석 작 '스머지_23' [이화익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시 전경 [이화익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차영석 스머지 연작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20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 전시 중인 차영석 작가의 스머지 연작 중 일부 모습. 2026.7.20. laecorp@yna.co.kr
▲ 차영석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차영석 작가가 20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7.20. laecorp@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명품 운동화와 가방 등 사물을 연필로 세밀하게 그려온 작가 차영석(50)이 지금까지의 작업과 전혀 다른 추상화 신작들을 선보인다.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차영석 개인전 '스머지'(Smudge)에는 닥종이에 연필로 그린 추상화 35점이 출품됐다.

차영석은 오랫동안 스니커즈, 시계, 보석, 스카프 등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물을 그려왔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구체적인 형상을 지우고 선 자체에 집중했다. 화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짧은 연필 선은 가까이에서 보면 빗자루를 닮은 작은 선들이 모여 있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안개 낀 산수화나 나무껍질, 가죽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오랫동안 사물을 그리다 보니 무엇을 그릴지만 고민하게 됐다"며 "'무엇을 그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탐구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나온 작품은 '스머지' 연작이다. 닥종이에 6B부터 H까지 다양한 농도의 연필을 바꿔가며 짧은 선을 반복해서 긋는다. 문지르거나 수정하지 않고 오직 선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농담과 깊이를 만든다.

형상과 의미를 배제하고 몸의 움직임과 시간이 쌓인 흔적 자체를 남기는 데 집중한 작업이다. 같은 방식으로 그리지만 그날의 호흡과 몸의 리듬에 따라 결과물은 달라진다.

화면을 모두 채운 뒤에는 작품을 180도 돌려 전시한다. 작업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기는 구도의 균형감이나 조형적 습관을 지우기 위해서다. 그림을 뒤집으면 시작이 끝이 되고 끝이 시작되면서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보다 그리는 과정 자체가 드러난다.

그는 "대상에서 벗어나 나의 '그리기'를 그려보자는 마음으로 이번 작업을 하게 됐다"며 "선이 쌓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그리기가 무엇인지 계속 찾아간다. 반복적으로 선을 긋다 보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짧은 선을 반복해 화면을 채우다 보니 하루 14시간씩 그리더라도 큰 작품은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작가는 "시간을 쌓아가는 작업"이라며 "왜 이렇게까지 그리는지 스스로 묻다 보니 결국 비어 있는 무언가를 채우려는 마음 때문인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차영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예술전문사를 받았다.

2009년 금호영아티스트에 선정됐으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다음 달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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