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란
| 2026-09-16 15:50:37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7월 20일. 기아대책기구에 유산기부 1억원을 하기로 함. 배고프고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15년 7월 20일 당시 85세이던 설순희 씨가 수첩에 남긴 일기다.
손때 묻은 수첩은 1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유산기부 전시회 '사랑으로 기억될, 삶' 입구에 고인의 대학 시절 사진과 함께 놓였다.
설씨는 1억원을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기아대책에 기부하기로 약정하면서 유산기부자 모임인 헤리티지클럽 1호 회원이 됐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설씨가 약속한 1억원은 카메룬 무지개 행복초등학교 건립에 사용됐다.
아들인 김영걸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어머니의 유산기부가 몇 년 뒤에 결실을 볼지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다"며 "그런데 무지개 행복학교에 와보니 놀라운 기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김 교수는 어머니 1주기를 기념할 방법을 고민하다 자신도 기아대책에 유산기부를 약정했고, 며느리와 두 딸도 동참했다. 어머니의 유산기부가 아들을 거쳐 가족의 나눔으로 이어진 셈이다. 한 집안에서 5명이 유산기부에 함께하며 헤리티지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최승주·김강욱 후원자는 기부보험 방식으로 나란히 헤리티지클럽 74·75호 회원이 됐다. 김 후원자는 "유산기부를 결정한 뒤 막내가 '아빠 그렇게 되면 나중에 저희가 받을 것은 없나요'라고 묻더라"고 전했다. 그는 "'엄마 아빠는 세상을 떠날 때 사회에 환원하고 가치를 나누는 것을 미리 약속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며 "아이들은 그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말해줬다"고 했다.
11년 전 약정해 2호 회원이 된 주선용 후원자는 "많은 분이 유산기부라고 하면 죽음과 연결 지어 터부시한다"며 "죽음이란 단어를 낯설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는 유산기부 후원자들의 개인 소장품을 통해 삶과 나눔의 가치를 조명하는 자리다. 후원자들이 오랫동안 간직해 온 수첩과 사진, 편지, 감사장, 가족사진 등 애장품을 통해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마음이 나눔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1994년 첫 후원아동의 모습을 담은 박연향 후원자의 흑백사진, 5대가 함께한 임자영 후원자의 가족사진 등 다양한 사연을 담은 애장품이 공개된다.
박재범 기아대책 부회장은 이날 "유산이라고 하면 누가 얼마를 남겼는지, 그 재산이 어디로 갔는지에 중점을 둔다"며 "이번 전시는 유산 기부를,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의 이야기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재산의 이전이 아니라 한 생애가 완성되는 방식, 그렇게 남겨지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는 기아대책의 두 번째 유산기부 전시다. 지난해 전시를 통해 유산기부 신규 약정 15건이 이뤄졌고, 관련 상담 인바운드 문의는 58건 접수됐다.
오는 22일에는 '국민 상담가'로 유명한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교수의 '다음세대를 위한 진정한 유산' 특별 강연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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