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으로 돌아간 '숯의 작가' 이배…30여년 예술세계 조망

뮤지엄 산서 개인전…8m 숯기둥·야외 대형조각 등 39점 선보여
"예술을 얼마나 이해하나 돌아봤다"…염원 담은 자기 성찰의 시간

박의래

| 2026-04-06 15:52:32

▲ 이배 개인전 '앙 아탕당: 기다리며'(En attendant) 전시 전경 (원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이배 개인전 '앙 아탕당: 기다리며' 전시 전경. 2026.4.6. laecorp@yna.co.kr
▲ 이배 작 '불로부터'(Issu du feu) [뮤지엄 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뮤지엄 산 야외 전시장 '무의 공간' 뮤지엄 산 야외 전시장 '무의 공간'에 이배의 '붓질' 연작 조각 작품. [뮤지엄 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배 개인전 '앙 아탕당: 기다리며'(En attendant) 전시 전경 [뮤지엄 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배 작가와 스테이플러 심 작업 [뮤지엄 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배 작가 (원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이배 작가가 6일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 구현된 논에서 싸리 빗으로 붓질을 하고 있다. 2026.4.6. laecorp@yna.co.kr
▲ 이배 작가 (원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서 이배 작가가 기자가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2026.4.6. laecorp@yna.co.kr
▲ 이배 개인전 '앙 아탕당: 기다리며'(En attendant) 전시 전경 [뮤지엄 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근원으로 돌아간 '숯의 작가' 이배…30여년 예술세계 조망

뮤지엄 산서 개인전…8m 숯기둥·야외 대형조각 등 39점 선보여

"예술을 얼마나 이해하나 돌아봤다"…염원 담은 자기 성찰의 시간

(원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이번 전시는 근원부터 다시 돌아보는 데 집중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무엇을 꿈꾸며 여기까지 왔는지 되짚었습니다. 스스로를 재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예술을 통해 하나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숯의 작가' 이배(70)의 30여 년 예술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개인전 '앙 아탕당: 기다리며'(En attendant)가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SAN)에서 오는 7일 개막한다. 작가의 회화부터 조각, 설치미술, 영상 등 39점이 전시장 곳곳에 걸렸다.

6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전시 제목을 '기다리며'로 정한 이유에 대해 "기다림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일종의 염원"이라며 "완결되지 않고, 부족하고, 모자란 아쉬움을 가진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지만 그는 "내가 예술가라고 하지만 얼마나 예술을 이해하나 돌아보며 전시를 준비했다"며 "오랫동안 준비하면서 내내 자신이 없었고 절망적이며 캄캄했다. 이런 마음이 '기다리며'라는 제목을 낳았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불안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전시는 시작부터 작가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작품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미술관 입구에 놓인 '불로부터'(Issu du feu)는 높이 8m, 폭 5m, 무게 7t에 달하는 숯 기둥이다. 숯은 전통적으로 정화와 치유를 상징해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는 관람객을 치유하게 한다.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산불이 많이 나면서 자연 재앙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며 "우리는 이런 재앙으로부터 회복되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그럴 수 있길 바라는 염원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야외 전시장인 '무의 공간'에 놓인 6점의 조각 작품 붓질(Brushstroke) 연작은 작가가 이번 전시에 가장 어울리는 작업으로 꼽은 작품들이다. 숯덩이처럼 쌓아 올린 검은 브론즈 조각이다. 높이 10m로 주변의 나무와 건축 지붕, 산세의 높이와 호응하도록 설계됐다. 자연과 건축, 조형이 하나로 어우러진 확장된 풍경을 이룬다.

작가는 "야외에 조각을 두면 전경을 해칠까 걱정돼 선호하지 않지만, 어색하고 생소하더라도 예술이란 그런 것이니까 용납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조각 뒤의 산들과 어우러지면서 관람객들이 산을 바라보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흰색 작품들로 꾸며진 '화이트'와 검은색 작품들이 모인 '블랙' 두 곳은 반대되는 색의 작품들이 모였지만 모두 빛을 품고 있다.

'화이트' 공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긴 종이가 걸렸고 그 주변에 흰색 조각들이 설치됐다.

이어 작가의 힘찬 붓질이 흰 벽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붓 작업에 가까이 다가가면 먹이 아닌 스테이플러 심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새벽 4시면 미술관을 찾아 이 공간에서 약 3만5천 개에 달하는 스테이플러 심을 벽에 박아 만들었다.

작가는 "연필로 그린 것처럼 엷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하나하나 철사가 보이는 역동성이 느껴지는 물성의 작품"이라며 "흰색 벽에 핀이 박히면서 물성과 비물성이 만나는 공간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검정 공간에는 숯덩어리가 쌓였고, 바닥에는 그의 붓질이 담겼다. 모두 같은 검은 숯처럼 보이지만 잣나무, 포도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로 만들어졌다. 바닥의 붓 선도 같은 검은색 목선으로 보이지만 역시 여러 나무의 숯에서 나온 묵으로 그렸다.

작가는 "다양한 나무들이 얽혀 있는 모양"이라며 "여러 나무가 있는 숲을 그리듯이 하나하나 다른 숯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고향인 청도에서 옮겨온 흙으로 구현된 논 위에서 작가는 싸리 빗으로 붓질하듯 땅을 휘저었다. 뒤편 9m 높이의 스크린에서는 논 위에서 직접 붓질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농부의 아들로 성장한 작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논에서는 전시 기간 다양한 식물이 자라나고 죽으면서 땅과 신체, 시간의 순환적 관계를 보여주게 된다.

작가는 "강릉 산불 현장에 가보니 산을 오르는데 흙이 무릎까지 들어갈 정도로 모든 것이 다 타 있었다. 그런데 그 땅에서 개미가 올라와 그 생명력에 너무 놀랐다"며 "농부는 땅을 일구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기도만 하게 된다. 이번 전시도 그런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1956년 청도에서 태어난 이배는 1982년 홍익대를 졸업한 후 198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숯'이라는 단일 매체에 파고들며 한국의 정신성을 국제 현대 미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018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 기사장을, 2023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다.

전시는 12월 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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