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홍
| 2023-02-27 15:48:24
광주 3·1 만세운동 주역에 가려진 참여자들 '주목'
당시 재판기록 분석…대장장이·안마사 등 직업군 다양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천정인 기자 = 1919년 3월 10일, 3·1 운동의 연장선인 광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된 후 풀려난 광주 수피아 여학교의 어린 학생들이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굳게 다문 결의에 찬 표정의 학생들 8명 사이 앞줄 한가운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여성이 눈에 띈다.
교사나, 어머니로 보이지만 고연홍·김필모·최수향·이봉금 등 수피아 여학생들 사이에 '식모'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학생들 식사를 책임졌던 이름 없는 여인, 수수께끼 같은 이 인물을 두고, 독립기념관 측은 허드렛일을 하던 식모까지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이 식모가 당시 학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함께 투옥됐는지에 대한 자료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고생스러운 옥살이를 하고 나온 학생들을 데리러 왔다 함께 사진만 찍은 인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광주 만세운동에 당시 지식인층에 속한 교사와 학생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는 것은 당시 재판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피아·숭일·농업학교 교사·학생들이 광주 만세운동을 주도해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이바지하고 헌신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주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조연'들의 면면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이 작성한 '광주 3·1운동의 재구성 -판결문을 중심으로'란 이름의 자료에 따르면 광주 3·1운동과 관련돼 구속된 사람은 103명이고, 4건으로 나뉘어 재판을 받았다.
재판받은 인물들의 직업은 크게 학생, 농업, 병원 종사(제중원 및 자혜병원), 고용인(雇人), 무직, 기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03명 중 학생이 53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사는 7명이었다.
농업이 직업인 사람은 15명이었고, 세 번째로 많은 직업이 제중원 간호사 등 8명의 병원 종사자들이었다.
7명의 무직자 중 광주 3·1운동을 총지휘한 김복현과 김용규 등도 포함돼 있었지만, 민성숙(2019년 대통령 표창 수여) 씨와 같은 정확한 신분과 행적이 불분명한 이도 있다.
특히 재판을 받은 인물 중 기타로 분류된 자들의 직업이 다양해 일반 시민들도 활발하게 만세운동에 참여했음이 나타났다.
기타로 분류된 7명 중 한길상은 석유장수인 '유상(油商)'이었고, 남궁혁은 목회자, 이달근은 안마사, 조공찬은 대장장이인 '단야직(鍛冶職)', 박재하는 신발 상인인 '화상(靴商)', 유상규는 이발업, 노천목은 수공업자인 '대공직(大工職)'이었다.
피고용자를 뜻하는 '고인(雇人)'도 6명이었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광주 3·1운동 교사와 학생들뿐만 아니라 석유장수, 안마사, 대장장이, 신발상인, 이발사, 수공업 제품을 만드는 장인까지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 원장은 "학생들에 집중된 참여 인물 외에도 더욱 심층적인 인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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