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창] 김병학 관장 "고려인 160년, 단절 아닌 축적의 역사"

'고려인 역사 지킴이'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관장
"한글 문학의 마지막 보루 지킨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박현수

| 2026-01-15 15:44:29

▲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관장 (광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지난 12일 찾은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김병학 관장. 2026. 1. 12. seva@yna.co.kr
▲ 월곡고려인문화관 배경 포즈 취한 김병학 관장 (광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김병학 관장. 2026. 1. 12. seva@yna.co.kr
▲ '연해주 이주와 항일운동' 설명하는 김병학 관장 (광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월곡고려인문화관에 전시된 '연해주 이주와 항일운동'에 관해 김병학 관장이 설명하고 있다. 2026. 1. 12. seva@yna.co.kr
▲ 중앙아시아에서 피어난 고려인 한글문학 기획전 (광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 '중앙아시아에서 피어난 고려인 한글문학'에 관해 김병학 관장이 설명하고 있다. 2026. 1. 12. seva@yna.co.kr
▲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사할린 한인들' (광주=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월곡고려인문화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중앙아시아로 건너간 사할린 한인들'에 관해 김병학 관장이 설명하고 있다. 2026. 1. 12. seva@yna.co.kr

[동포의 창] 김병학 관장 "고려인 160년, 단절 아닌 축적의 역사"

'고려인 역사 지킴이'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관장

"한글 문학의 마지막 보루 지킨 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

(광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고려인의 이주 역사와 문화를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여는 첫걸음입니다."

지난 12일 찾은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자리한 월곡고려인문화관 '결' 내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은 유물 보존을 위해 난방을 하지 않아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연합뉴스와 인터뷰 내내 김병학(60) 관장의 목소리만큼은 뜨거웠다.

월곡고려인문화관 명칭인 '결'은 고려인들이 겪어온 역사의 흐름과 그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정신을 상징한다. 고려인의 아픈 역사(숨결)를 기억하고, 현재의 이웃으로서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김 관장은 "이곳은 고려인의 고통을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삶을 지켜왔는지를 기록한 증언의 현장"이라고 소개했다.

'고려인 역사 지킴이'로 불리는 김 관장은 전남 신안 출신으로 전남대를 졸업한 후 1992년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향했다. 예정했던 1년의 체류는 현장의 삶과 역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져 25년이 됐다.

그는 고려인 최초의 강제 이주지인 우슈토베 등지에서 한글 교사로 활동하며 모국어 교육에 헌신했다. 이후 현지 한글 신문인 고려일보 기자와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을 역임하며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2017년 귀국한 그는 2021년 개관한 월곡고려인문화관 '결'의 초대 관장을 맡았다. 중앙아시아 전역을 돌며 수집한 생활 유물 등 1만 2천여 점의 사료를 토대로 고려인의 항일 독립운동과 강제 이주사를 전시와 교육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그가 수집한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원고 등 23권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201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 관장은 "고려인 160년 역사는 단절이 아닌 축적의 역사"라며 "우리가 이 기록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한국 사회에 정착한 고려인 후손들도 뿌리 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1층 상설전시실은 고려인 이주 160년의 흐름을 '첫 번째 이주', '연해주 이주와 항일운동', '문화운동', '강제 이주', '강제 이주 극복' 등 다섯 가지 주제로 보여준다. 1863년부터 시작된 초기 이주 장면은 러시아 학자들이 남긴 사진들로 생생하게 재현됐다.

김 관장은 "헐벗은 이주민도 있었지만, 연해주에서 자리를 잡고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던 시기도 있었다"며 "고려인 역사는 비극의 반복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일궈온 주체적인 개척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전시의 또 다른 축은 독립운동이다. 1920년 철혈광복단이 무기 자금을 마련하려 일본 은행 호송차를 습격한 '간도 은행 자금 탈취 사건' 등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김 관장은 "당시 고려인들에게 무장투쟁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다"며 "단순한 사건이 아닌 독립운동사의 정수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천 장군에 대해서도 "고려인 무장투쟁의 상징인 그의 일기에는 독립을 향한 절박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1922년 일본군의 연해주 철수 이후 고려인 사회는 무장투쟁에서 교육과 문학 중심의 문화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1931년 한민족 최초의 사범대 개교와 380여 개의 민족학교 설립, 모국어 신문 발행 등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김 관장은 "총을 내려놓았어도 민족의 정신까지 내려놓지는 않았던 문화적 전성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937년,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라는 가혹한 시련을 맞는다. 김 관장은 토굴 생활을 재현한 전시물 앞에서 "도착한 곳엔 집도 농지도 없었고, 사진조차 남기지 못할 만큼 처참한 삶이 이어졌지만, 고려인들은 결국 황무지를 옥토로 바꿔냈다"며 벼농사의 어버이로 불린 김한삼 교수의 업적을 기렸다.

2층에서는 광복 80주년 기념 '사할린 고려인 특별전'이 한창이다.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모국어 교육과 신문을 지켜낸 이들의 기록이다. 아울러 1958년부터 1990년까지 발간된 한글 문학 단행본 15권도 전시 중이다.

김 관장은 "사할린 고려인들은 해방을 맞고도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며 "그럼에도 모국어 교육과 신문을 지키며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려인 문학은 그들에게 생존의 언어였다"며 "비록 1980년대 이후 쇠퇴했지만, 끝까지 한글을 붙잡았던 이들의 사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이주민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그들이 한국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이해하고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라며 한국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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