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옆에 있으니까"…격동의 한일, 미술로 이어진 80년(종합)

국립현대미술관·요코하마미술관 주최 '로드 무비'…양국 미술교류사 되짚어
백남준·다카마쓰 지로 등 43명 작가 작품 200여 점 소개

박의래

| 2026-05-13 15:41:16

▲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전시 전경 (과천=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오는 14일부터 시작하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의 전시 전경. laecorp@yna.co.kr
▲ 히라타 미노루 작 '백남준의 클린징 이벤트, 소게츠 아트 센터' (과천=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오는 14일부터 시작하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에 걸린 일본 사진작가 히라타 미노루 작 '백남준의 클린징 이벤트, 소게츠 아트 센터'. laecorp@yna.co.kr
▲ 조양규 작 '밀폐된 창고' (과천=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오는 14일부터 시작하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에 전시된 조양규 작 '밀폐된 창고'. laecorp@yna.co.kr
▲ 백남준 작 '바이 바이 키플링' 中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이불 작 '사이보그 W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나카 고키 작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 中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다나카 고키 작가 (과천=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다나카 고키 작가가 1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5.13. laecorp@yna.co.kr

"항상 옆에 있으니까"…격동의 한일, 미술로 이어진 80년(종합)

국립현대미술관·요코하마미술관 주최 '로드 무비'…양국 미술교류사 되짚어

백남준·다카마쓰 지로 등 43명 작가 작품 200여 점 소개

(과천=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964년 5월 24일 일본 아방가르드 예술의 진원지였던 도쿄 소게츠 아트 센터에 백남준(1932∼2006)이 등장한다.

백남준은 자기 머리에 세제를 쏟거나 피아노를 부수고, 옷을 입은 채 욕조 안에서 몸을 씻는 등 파격적인 행위를 보여줬다.

이 장면은 일본의 전위 예술 현장을 촬영한 사진가 '히라타 미노루'의 카메라에 담겼다. 그의 사진들은 백남준 예술의 초기 단계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기록물이자 양국 예술가 협업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두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갈등 등 복잡한 역사 속에서 요동쳤다.

하지만 한·일 예술가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도 국경을 넘나들며 교류를 이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MMCA)과 일본 요코하마미술관(YMA)이 공동 주최하는 전시 '로드 무비: 1945년 이후 한·일 미술'이 오는 14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1945년부터 현재까지 80년간 이어온 두 나라 미술 교류의 여정을 백남준과 이불, 이우환, 정연두, 다나카 고키, 다카마쓰 지로, 무라카미 다카시 등 작가 43명(팀)의 작품 200여 점을 통해 되짚는 자리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요코하마미술관에서 '항상 옆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 80년'이란 제목으로 열렸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이어진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구라야 미카 요코하마미술관장은 "일본 전시 제목은 항상 옆에 있는 친구여서 서로 잘 아는 것 같지만 의외로 잘 모르고, 오히려 싸우기도 하는 양국 관계를 떠올리며 지었다"며 "일본 전시에선 예상보다 1만명 많은 3만7천명이 다녀갔으며 특히 다른 전시들과 달리 젊은 관객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출발점은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식민지의 잔재와 분단이란 이중의 조건 속에서 예술을 이어갔다.

조양규의 1957년 작 '밀폐된 창고'는 노동 현장의 어둡고 폐쇄적인 공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학교에 다니며 창고 노동 등 노역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조양규는 재일조선인들의 척박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일본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1960년대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간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는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작품은 남북 분단과 북송이라는 역사적 선택 앞에 놓였던 개인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한국과 일본 예술 교류의 상징인 인물이다.

그는 1950년대 도쿄에서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뒤 독일로 건너갔다가 1960년대 초 일본으로 돌아와 평생의 동반자이자 협업자였던 아내 구보타 시게코를 만났다.

1986년 작 '바이 바이 키플링'은 이번 전시의 핵심 축이 되는 작품이다.

백남준은 서울·도쿄·뉴욕을 위성으로 연결해 실시간 소통하며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다"고 단언했던 영국의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선언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작품 속에서는 한국의 전통춤과 미국의 대중음악, 일본의 전위 예술이 실시간으로 교차한다. 미국의 루 리드, 필립 글래스, 키스 해링과 일본의 사카모토 류이치, 이세이 미야케 등 당대 예술가들이 참여해 텔레비전이란 매체가 국가와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백남준은 1949년 한국을 떠난 뒤 약 35년 만인 1984년 처음 귀국했는데, 구보타 시게코는 백남준의 한국 방문에 동행해 '브로큰 다이어리: 한국 여행'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 역시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일 교류는 제도 중심에서 개인과 네트워크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 시기 등장한 젊은 작가들은 매체와 주제 모두에서 새로운 감각을 보여준다.

1987년 도쿄예술대 학생이던 나카무라 마사토는 한국을 방문해 고낙범, 이불 등이 참여한 '뮤지엄'(MUSEUM) 그룹전을 접하며 한국 작가들과 교류했고, 홍익대에서 대학원을 다녔다. 1992년에는 도쿄예술대 동창인 무라카미 다카시를 한국으로 초대해 2인전 '나까무라와 무라까미전'을 열기도 했다.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미술계에서 떠오르던 이불은 '한·일 행위예술제'를 통해 일본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했다.

전시에 나온 이불의 '사이보그 W5'는 당시 활동하던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매끈한 인체 조각은 미래적이고 완벽해 보이지만, 머리나 팔다리가 결여된 불완전한 형태를 띤다.

기술 문명 속 인간 신체에 대한 이상과 불안을 함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전통적인 여성 신체 재현을 전복하며,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적 경계를 해체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양국 예술가들은 동일본 대지진, 재일조선인 차별, 역사 인식 문제 등 두 나라가 공유하는 상처를 다룬다. 과거의 교류가 단순한 영향 관계였다면, 오늘날의 교류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모색하는 단계로 나아갔음을 시사한다.

다나카 고키의 2018년 작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은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서부터 최근 가와사키에서 발생한 한국인 혐오 시위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의 사건을 교차시키는 영상 작업이다.

작가는 재난과 차별의 역사 앞에서 서로 다른 위치에 선 이들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두 나라가 경험한 역사적 순간과 그 속에서 형성된 미술 교류의 흔적을 되짚는 자리"라며 "한·일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