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
| 2022-06-10 15:39:33
[신간]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타인의 기원·켈트의 꿈·식물의 은밀한 감정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칠레 출신인 작가의 세 번째 작품으로, 지난해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객관적 사실에 소설적 허구를 입힌 논픽션 소설이다.
다섯 개 이야기인 소설은 프리츠 하버,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그로텐디크 등 과학 세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화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속 밤하늘에 채색된 합성 안료 프러시안 블루는 유럽 미술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합성 과정에서 치명적 부산물인 시안화물을 만들어냈다.
공기 중에서 질소를 추출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는 식물 생장을 돕는 질소 비료 탄생에 일조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가스 개발에 앞장서며 시안화물을 이용한 치클론B를 만들어냈다. 치클론B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에 쓰였다.
소설은 과학계의 진보적 발견과 파괴의 역사를 다층적으로 조망한다. 블랙홀 존재의 증명, 양자 이론 수립 등 위대한 성취를 이룬 과학자들의 정신적 경험과 뜨거운 지적 욕망, 치열한 이론 논쟁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실제 인물과 이론, 역사적 서사의 빈틈을 작가의 상상력이 채워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작가는 "'프러시안 블루'에는 허구의 문장이 하나밖에 없는 반면에 뒤에서는 더 자유분방하게 쓰되 각 작품에서 다루는 과학 개념에 충실해지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문학동네. 260쪽. 1만6천 원.
▲ 타인의 기원 =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이 2019년 세상을 떠나기 전 출간한 산문이다.
2016년 하버드대에서 연 자신의 강연 시리즈를 바탕으로 집필했다.
작가는 미국 역사에서 강력한 난제인 인종차별이란 갈등이 인간을 '나'와 '타인'으로 구별하고자 하는, 지독한 '타자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작가는 19세기 당시 여러 문헌과 자신의 소설, 윌리엄 포크너·해리엇 비처 스토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참고자료로 활용해 그 증거를 제시한다. 그중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에 낭만성을 부여한 시도로 꼽는다.
산문은 '백인에 의한 흑인의 타자화'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국가 간, 개인 간, 집단 간에 야기되는 갈등과 분란도 타자화의 구별 행위와 상관성이 있다고 짚는다.
바다출판사. 152쪽. 1만4천800원.
▲ 켈트의 꿈 =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조구호 옮김.
라틴아메리카문학의 거장이자 201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장편이다.
벨기에령 식민지 콩고에서 자행된 잔혹한 학살을 처음으로 고발한 실존 인물 로저 케이스먼트의 일생을 복원했다.
영국 외교관이자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인 케이스먼트는 1916년 반역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작가는 대영제국의 훈장과 작위까지 받은 인물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이유를 찾고자 그의 삶을 입체적인 구성과 장중한 문체로 들여다봤다.
유럽 식민주의의 이면과 전횡을 조명한 대서사로, 스페인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번역 출간됐다.
문학동네. 728쪽. 2만5천 원.
▲ 식물의 은밀한 감정 =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백선희 옮김
1994년 '편도승차권'으로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가 식물의 지능과 감각, 상상력, 생존본능, 인식 능력 등 우리가 몰랐던 발견을 들려준다. 과학적 관찰과 실험, 세계적인 식물학자·인류학자들과 나눈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작가는 식물이 공포와 감사, 질투, 연민 등 광범위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한다.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며 인간이 할 일은 귀기울여 듣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식물은 인간이 없으면 더 무성하게 자라나지만, 인간은 식물 없인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식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동반자인지 자각하면, 집안의 화분도 달리 보이게 된다.
연금술사. 216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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