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돌베개' 찾아낸 경주 서악동 석침총…117년 만에 재발굴

국립경주박물관, 재조사 나서…무덤 구조·당대 장례문화 등 규명
도쿄대 보관 중인 유물 조사도 추진…"신라 돌방무덤 연구 출발점"

김예나

| 2026-09-10 15:38:31

▲ 1909년 조사 전 모습 1916년 발간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3권에 실린 사진 [국가유산 지식이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발견된 석침(돌베개) 1916년 발간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3권에 실린 사진 [국가유산 지식이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경주 서악동 석침총 모습 1916년 발간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3권에 실린 사진 [국가유산 지식이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1909년 조사 당시 돌방 내부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경주 석침총 원경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과거 일본인 학자들이 조사하며 돌베개(石枕·석침)를 찾아낸 신라 고분을 약 117년 만에 다시 들여다본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서악동 석침총을 재발굴 조사한다고 10일 밝혔다.

석침총은 석침, 즉 돌베개가 발견된 무덤이라는 뜻을 지닌 신라 고분이다.

1909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1868∼1935),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1880∼1959) 등 일본인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돌방과 주검 받침(屍床·시상) 등이 발견됐다.

그러나 당시 일제는 무덤을 어떤 방식으로 조사했는지 구체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발굴 조사를 마친 뒤에는 정식 보고서도 펴내지 않았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는 당시 작성된 일부 도면과 사진, 보고문 등이다.

한반도의 고대 문화를 일제의 시각에서 조사하고 해석하던 시대적 환경까지 더해져 석침총 조사는 유물 발굴 수준에 그쳤고, 제대로 된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대환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석침총 재발굴은 당시의 조사 성과와 한계를 넘어 광복 이후 축적한 신라 고고학의 연구 성과와 과학적 분석 기술을 바탕으로 발굴을 다시 검증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이번 조사를 통해 석침총을 깊숙이 들여다볼 방침이다.

무덤 구조를 비롯해 축조 기법을 밝히고 장례 과정, 유물의 배치, 무덤길과 무덤을 둘러싼 돌의 구조, 제사 흔적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최근 기술을 활용한 과학적 분석과 조사에도 나선다.

박물관은 "돌방 바닥 토양과 돌방 벽에 발린 석회, 돌방을 만든 석재 등을 분석해 무덤 축조와 사용 과정에 관한 정보를 확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909년 출토된 이후 일본 도쿄대에서 계속 보관해 온 유물도 조사할 예정이다.

석침총 재발굴은 신라의 역사·문화를 밝힐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전망이다.

석침총이 자리한 서악동 고분군은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한 대형 무덤이 모여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하지만, 그간 체계적인 발굴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조사를 통해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신라의 장례 방식이 바뀌는 과정과 서악동 고분군의 역사적 성격이 드러날 것으로 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김 연구관은 "일제강점기의 신라 고분 연구를 오늘의 시각에서 다시 살펴보고, 서악동 고분군과 신라 돌방무덤 연구의 새로운 출발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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