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eople] 배우 오광록 "힘을 빼야 산다는 진리, 촬영현장서 깨달았죠"

연극 20년, 영화 20년, 무용까지…예술로 삶을 말하다
"현대무용은 나의 오랜 갈망… 영화 '연보라빛 새'로 피어났어요"

박현수

| 2026-02-02 15:38:31

▲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배우이자 무용가 오광록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최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인터뷰를 한 배우 오광록은 연극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가치는 "사람한테 잘하는 게 나한테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seva@yna.co.kr
▲ 이정현 결혼식에 참석한 오광록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배우 오광록이 2019년 7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가수 겸 배우 이정현 결혼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4.7. mjkang@yna.co.kr
▲ KBS 드라마 '강적들' 제작발표회에서 오광록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2008년 4월 서울 상암동 KBS미디어센터에서 열린 KBS 2TV 월화드라마 '강적들' 제작발표회. 왼쪽부터 채림, 이진욱, 오광록, 마동석, 최자혜, 이종혁. 2008.4.7 maum@yna.co.kr
▲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출연한 오광록(왼쪽)과 최민식 [CJ ENM 제공]

[K-People] 배우 오광록 "힘을 빼야 산다는 진리, 촬영현장서 깨달았죠"

연극 20년, 영화 20년, 무용까지…예술로 삶을 말하다

"현대무용은 나의 오랜 갈망… 영화 '연보라빛 새'로 피어났어요"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시는 내 마음속에서 찬란한 순간이고, 춤은 내 몸이 시를 소리와 몸짓으로 치환해가는 또 다른 언어입니다."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운율이 느껴지는 말투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배우 오광록(64)이 최근 연합뉴스와 만나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의 예술 세계와 삶의 궤적을 들려줬다.

오광록은 영화 속 강렬한 이미지 뒤에 숨겨진 '문학 소년'의 감수성과 현대무용수로서의 뜨거운 열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예술에 대한 깊은 철학을 전했다.

그의 예술적 뿌리는 청소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교사의 영향으로 시인을 꿈꾸기 시작했고, 신문 사설과 칼럼을 읽으며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을 길렀다.

그는 "글을 쓰며 그날의 일뿐 아니라 마음의 물결까지 적어 내려간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든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20대 후반에는 20㎏에 달하는 습작 노트와 국어사전을 배낭에 메고 강원도 산과 안면도로 들어가 시 쓰기에 몰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시인 배우'로도 불린다.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고교 시절 친구이자 시인인 남호섭의 권유였다. 재수 시절 친구가 가져온 연극배우 모집 기사를 보고 무작정 연극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이원경, 이해랑, 김동원 등 연극 거장들에게 연기를 배우며 '배우 예술원' 1기생으로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

오광록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춤추는 것을 좋아했고, 형과 누나의 몸짓을 보며 자라 자연스럽게 몸으로 표현하는 법을 익힌 것 같다"고 말했다.

1982년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데뷔한 뒤 20년 가까이 연극 무대를 지켰다. 극단 완자무늬 창단 멤버로도 활동했고, 박근형 연출의 '춘향 1991'에서는 포스터 문구와 그림 작업에도 참여했다.

연극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가치는 "사람한테 잘하는 게 나한테 잘하는 것"이다. 그는 "좋은 언행으로 대하면 상대의 눈빛과 몸짓이 좋아지고 그게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고 말했다.

영화계 진출은 2001년 '와이키키 브라더스'부터였다. 배우 송강호가 그의 연기를 극찬하며 박찬욱 감독과 인연을 맺었고, '복수는 나의 것'을 시작으로 '복수 3부작'에 모두 출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파란만장' 등 박찬욱 감독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며 '박찬욱의 페르소나'로 꼽힌다.

지난해 9월 개봉한 박찬욱의 '어쩔수가 없다'에서는 여주인공 미리(손예진 분)의 친정아버지이자 유만수(이병헌 분)의 장인 역을 맡았다.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 가계 지출을 줄이려 애쓰는 딸을 곁에서 돕고 지지하는 친정아버지로 등장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의 예술적 지평은 연기를 넘어 현대무용과 연출로 확장됐다. 2012년 직접 쓴 시를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 '연보라빛 새'를 통해 연출가이자 무용수로 데뷔했다. 현대무용 전공자인 아내가 안무가를 소개하며 새로운 도전의 문이 열렸다.

그는 "대사 없이 오직 춤으로만 평화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며 "서울 테헤란로와 한강에서 웃통을 벗고 새처럼 달리고 춤추며 언어의 무소용함을 침묵의 몸짓으로 채웠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무용에 대한 열정은 2014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시선'과 연계된 무대 공연 '시선'으로 이어졌다. 연극과 무용이 결합된 축제 파다프(PADAF)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공연에서 그는 공동 연출과 주연을 맡아 33분간의 무대를 선보였다.

아르코 소극장 무대에서 그는 "행복해?"라고 묻는 '연보라빛 새'의 환영과 대화를 나누고, 바람의 악기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등 시적 대사와 현대무용이 결합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는 "연극을 오래 했지만 좋아하는 소극장 무대에 무용수로 처음 서게 돼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는 영화 '시선' 촬영 중 겪은 아찔한 사고를 꼽았다. 캄보디아와 강원도 양양 하조대에서 진행된 수중 촬영 중 이안류에 휩쓸려 익사 위기에 처했다.

그는 "물속에서 세 번이나 물을 먹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구조하러 온 잠수부를 보고 '내가 힘을 빼야 둘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 경험 이후 '힘을 빼야 산다'는 깨달음을 삶과 예술의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오광록은 후배들에게 진솔함과 성실함을 강조했다.

"허무와 염세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에게 성실해야 합니다.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으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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