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예술·지워진 이름…여성 환경예술 복원 프로젝트

정강자 '무체전' 56년 만에 복원…'드림 하우스' 아시아 첫 공개
1956∼1976년 女작가 11인 환경 예술 재구성…리움미술관 '다른 공간 안으로'

박의래

| 2026-04-29 15:28:56

▲ 리움미술관 '다른 공간 안으로' 전시 개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 전시 기자간담회 및 프리뷰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6.4.29 ryousanta@yna.co.kr
▲ 리움미술관 '다른 공간 안으로' 전시 개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 전시 기자간담회 및 프리뷰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6.4.29 ryousanta@yna.co.kr
▲ 마리안 자질라·라 몬테 영·최정희 작 '드림 하우스' [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정강자 작 '무체전' [리움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주디 시카고 작 '깃털의 방'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 전시 기자간담회 및 프리뷰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6.4.29 ryousanta@yna.co.kr
▲ 타니아 무로 작 '한때 우리는 알았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 전시 기자간담회 및 프리뷰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2026.4.29 ryousanta@yna.co.kr
▲ 리움미술관 '다른 공간 안으로'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왼쪽부터) 안드레아 리소니 하우스 데어 쿤스트 예술감독과 마리나 푸글리에세 밀라노 MUDEC 관장,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이 29일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4.29. laecorp@yna.co.kr

사라진 예술·지워진 이름…여성 환경예술 복원 프로젝트

정강자 '무체전' 56년 만에 복원…'드림 하우스' 아시아 첫 공개

1956∼1976년 女작가 11인 환경 예술 재구성…리움미술관 '다른 공간 안으로'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회화나 조각같은 전통 미술은 관람자가 작품에서 한 발 떨어져 일방적인 시선을 통해 감상한다. 하지만 '환경 예술'(ambiente)은 관람자가 작품 안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경험하는 체험형 작업이다. 특정 전시에 맞게 설치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남아 축적되지 않고, 전시가 끝나면 해체돼 사라지는 일회성 성격을 지닌다.

'환경 예술' 개념은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가 1949년 처음 선보였다. 그는 관람자가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작품 안으로 직접 들어가 온몸으로 빛, 소리, 색, 공기, 움직임을 경험하는 예술 형식에 착안했다. 환경예술은 1976년 열린 제37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환경/예술'을 주제로 다뤄지고 이후부터는 '설치 미술'이란 용어로 대체됐다.

약 30년 남짓 존재했던 환경 예술은 보존과 수집이 어렵다는 특성으로 주류 미술계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런 조건은 오히려 남성 위주 미술계에서 여성 작가들에게 하나의 '해방의 공간'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기록조차 충분히 남지 못한 채 미술사에서 지워졌다.

리움미술관에서 다음 달 5일 개막하는 기획전 '다른 공간 안으로: 여성 작가들의 공감각적 환경 1956-1976'은 이렇게 사라진 작품과 잊힌 이름을 복원하는 자리다. 독일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시작해 로마 국립 21세기 미술관(MAXXI), 홍콩 M+를 거쳐 리움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다.

전시를 처음 기획한 안드레아 리소니 하우스 데어 쿤스트 예술감독과 마리나 푸글리에세 밀라노 문화 박물관(MUDEC) 관장은 여러 연구진과 전 세계에 흩어진 서신, 건축 도면, 당시 비평 기사 등을 조사해 '사라진 작품'들을 최초 공개 당시의 모습에 충실하게 재현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기관의 보존연구가와 미술사가들은 작가·유족과 협력해 사료 속 단서들을 현실 공간으로 되살려내 미술사의 누락된 부분을 복원했다.

29일 리움미술관을 찾은 안드레아 예술감독은 "환경 예술의 역사는 곧 파괴와 소실의 역사"라며 "당시 작업은 보존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에 여성 작가들은 미술사와 환경 예술의 역사 양쪽 모두에서 잊히거나 지워지는 이중의 소외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주디 시카고, 리지아 클라크, 야마자키 츠루코, 정강자 등 11인(팀)의 작가가 참여해 잊혀진 여성 작가들이 1956∼1976년 선보였던 환경 예술 작품을 초기 형태를 고증해 재구성했다.

대표작은 '드림 하우스'다.

흰색 카펫이 깔린 커다란 방에 여러 대의 스피커가 설치돼 있고, 기계음 같은 동일한 주파수의 사인파 음향이 겹겹이 쌓이며 공간을 채운다. 지속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관람객의 신체 감각까지 동기화시키는 듯한 경험을 만든다.

여기에 공간마다 다른 조명의 빛이 쏟아진다. 관람객은 서 있는 공간에 따라 다른 빛과 다른 소리를 들으며 공간과 감각적으로 결합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시각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였던 마리안 자질라가 실험 음악의 대가 라 몬테 영과 1962년에 구상해 1966년 뉴욕 처치 스트리트의 로프트에서 처음 실현했다. 2003년부 최정희 작가가 합류해 세대를 가로지르는 협업을 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선 리움미술관에서 처음 선보인다.

정강자의 '무체전'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극적인 복원 사례다. 1970년 서울 국립공보관에서 열린 이 작업은 전시 도중 전위예술을 정치 선동으로 여긴 정부의 지시로 강제 철거됐다. 이후 56년 만에 처음으로 재구성됐다.

관람객이 검은 장막 속 공간에 들어서면 연기가 퍼지며 사이렌이 울린다. 이어 관람객의 얼굴에 강한 빛이 비치고는 "여러분은 지금 나의 작품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라는 작가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비물질적 요소와 감각적 자극을 통해 관람 경험을 작품으로 만든 작업으로, 당시 사회의 긴장된 분위기를 은유하는 동시에 예술의 경계를 급진적으로 확장한 시도였다.

정강자는 '신전동인'과 '제4집단'에서 활동하며 신체와 행위를 매체로 삼은 한국 전위미술의 핵심 작가다.

주디 시카고의 '깃털의 방'도 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한 대표적 사례다.

곡면으로 처리된 흰색 공간 안을 수십 킬로그램의 거위 털로 채웠다. 관람객은 무릎까지 올라오는 거위 털 공간을 거닐며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비현실적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단단한 금속과 구조를 중시하던 남성 중심 미니멀리즘에 대한 대응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재료를 통해 공간의 감각을 전복한 작업이다.

이 밖에도 관람객의 신체 경험을 자극하는 다양한 작업이 이어진다. 직각과 콘크리트 중심의 건축 질서에 맞서 유연한 공간을 제시한 알렉산드라 카수바의 '스펙트럼 통로', 강한 빛과 음향으로 접근 자체를 불편하게 만들어 '금기'를 체감하게 하는 타니아 무로의 '한때 우리는 알았다' 등이 포함됐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환경 예술을 봉인된 역사적 장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살아 있는 형식으로 거듭나게 하는 전시"라며 "전문적이고, 미술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면서 대중적인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11월 29일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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