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3-05 15:25:54
과거·현재의 이명미가 한 화면에…"여러인생 모여 오늘의 내가"
이명미 개인전, 우손갤러리 서울·대구서 열려…여든 앞둔 작가의 천진한 그림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냉면집 가면 비빔냉면도 먹고 싶고, 물냉면도 먹고 싶잖아요. 어떨 땐 둘을 한 번에 먹고 싶고. 제 그림은 비빔냉면이랑 물냉면이 함께 담긴 작품이에요. 과거의 이명미와 지금의 이명미가 다 같이 있는 그림이에요."
지난해 제26회 이인성 미술상을 받은 화가 이명미(76)의 개인전이 우손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5일 각각 시작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얼마나 많은 이명미가 필요한가'이다.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오늘의 이명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러 인생을 거친 이명미가 모두 모여 만들어진 사람"이라며 "내 안의 다양한 이명미를 한 화면에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전시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여든을 앞둔 나이지만 그의 그림은 밝고 강렬하다. 원색을 사용해 사람도 동물도 단순하게 표현한 화풍은 아이의 천진한 그림 같다. 하지만 붓 선은 동양화의 붓질처럼 섬세하다.
전시의 대표작은 '랜드스케이프'(landscape)다. 1990년에 만든 작가의 작품들을 잘라 새로 캔버스에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이어서 그렸다. 비빔냉면과 물냉면이 함께 담긴 작품이란 설명처럼 1990년의 이명미와 2026년의 이명미가 공존한다.
작가는 "과거를 현재로 옮겨온 뒤 이어서 그린 작품"이라며 "제가 원하는 매력 포인트를 그림에 다 넣고 싶었다"고 했다.
2024년 작 '후 엠 아이'(Who am I)와 '아이 엠 어 퍼슨'(I am a person)은 한 세트처럼 짝을 이루는 작품이다. 파란 화면에 얼굴 없는 짐승이 '내가 누구냐'고 묻고 있다. 맞은편 화면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배경으로 얼굴에 '나는 사람이다'라는 글이 적힌 갈색 짐승이 있다.
작가는 "짐승보다 못 한 사람도 있고, 사람보다 나은 짐승도 있어서 이런 그림을 그려봤다"고 설명했다.
2019년 작 '너를 사랑할 수 있을까'는 폭죽이 터지는 듯한 색색의 배경에 '언젠가는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문구를 크게 적었다. 그 아래는 여우와 늑대를 그려 넣었다. 그림에 많은 텍스트를 넣어 만화같이 표현하는 이명미 특유의 화법이다.
작가는 "그림이 작가를 괴롭히면 안 된다. 수련하는 것 같은 그림은 저는 못 한다"며 "친절한 그림들이다. 글씨를 쓰면 보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고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미는 홍익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대부터 활동한 한국 현대미술 1세대 여성작가다.
초기부터 자유로운 원색을 사용하고 구상과 추상을 아우르는 독특한 회화 작업을 했다. 당시 단색의 추상이 주류였던 국내 화단에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작가는 "앞으로 20년만 더 그림을 그리면 지금보다 더 대단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젊을 때는 근면 성실하면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근면 성실히 그려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떤 그림을 남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전시는 5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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