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3.0] 제주살이 푹 빠진 미국인 해녀 겐터 "전생에 해녀였나봐요"

"자연에 순응하며 돕고 사는 공동체 정신이 매력…천직 삼을 것"
제주 외국인 많아 다문화 친화적…"구쟁이 하영?" 달고 살아

강성철

| 2026-06-08 14:00:39

▲ 미국인 제주 해녀 카일리 겐터 [카일리 겐터 제공]
▲ 카일리 겐터와 영락리 어촌계 해녀들 [카일리 겐터 제공]
▲ 물질을 준비하는 해녀 카일리 겐터 [카일리 겐터 제공]

[다문화 3.0] 제주살이 푹 빠진 미국인 해녀 겐터 "전생에 해녀였나봐요"

"자연에 순응하며 돕고 사는 공동체 정신이 매력…천직 삼을 것"

제주 외국인 많아 다문화 친화적…"구쟁이 하영?" 달고 살아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요즘 가장 많이 듣고 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구쟁이 하영 잡았수다?'입니다. '소라 많이 잡았냐?'는 제주도 사투리로 해녀들이 물질에 들고 날 때마다 인사말처럼 하는 말인데 입에 착 달라붙어 자연스레 나오는 거 보니 저는 전생에 해녀였나 봅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제주살이에 푹 빠진 미국 여성 카일리 겐터(35)의 직업은 해녀다.

10년째 제주에 살면서 정식으로 해녀학교를 나왔고 수습 과정을 거쳐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 어촌계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젠터 씨는 수십 년 물질을 해온 '삼춘'(제주에서는 선배 해녀를 부르는 명칭)에 비하면 몇 년 안 된 초보자지만 평생의 업으로 삼을 각오로 바다에 들어가고 있다고 귀띔한다.

14년 전 경남 진주 지역 중고등학교에 원어민 강사로 취업하면서 한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의 곳곳을 다녀봤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든 곳이 제주라고 치켜세웠다.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스킨스쿠버 강사였던 남편을 만났고, 제주에서 펜션을 운영하다가 어느 날 해녀를 알게 됐다.

"처음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해녀 문화에 대한 호기심에 해녀학교에 등록했지만 해녀가 될 생각까지는 없었죠. 그런데 알면 알수록 해녀만의 독특한 문화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잠수복이 일상복처럼 느껴지게 됐습니다."

겐터 씨는 해녀들은 프리다이빙으로 해산물을 채취하기에 개인사업자일 거 같지만 공동체를 가장 우선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 다른 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어린 해녀가 한 사람의 몫을 해낼 때까지 삼춘들이 돌보고, 약자에게 수확물을 나누고,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채취 금지기를 두고, 채취를 안 할 때는 바다 잡초 제거에도 앞장서는 등 서로 도우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정신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문화를 후대에 전승하는 것까지 사람 냄새가 폴폴 난다"며 "보험 가입이나 진료비도 지원해주는 등 혜택도 많다"고 즐거워했다.

코로나 이후로 펜션을 찾는 여행객이 줄어들어서 최근에는 '반려동물 호텔'로 업종을 변경했다. 그는 "워낙 반려동물을 좋아해서 지인들이 여행 갈 때마다 맡아주었는데 내친김에 좀 더 전문화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제주도에는 다문화 가족이 생각보다 많다며 그는 "섬 문화가 원래 외지인이나 타문화에 배타적인 줄 알았는데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 곳보다 따뜻하다. 제주는 자연도 매력적이지만 사람들과 어우러짐이 더 즐거운 곳"이라고 강조했다.

토종 한식주의자인 남편과 비교하면 종종 빵과 피자·파스타를 먹어야 하는 겐터 씨는 먹는 것으로 부부싸움을 할 만도 하지만 각자 먹고 오는 방법으로 타협을 봤다며 다문화가 서로를 존중해야 할 첫 번째가 식문화라고 말했다.

겐터 씨는 한국 사회가 외국인과 외국 문화를 수용하는 다문화 공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어서 희망적이라고 했다. 그는 "타 문화와 교류하면 고유의 문화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변모하는 것"이라며 "주변에 한국 생활을 새로 시작하는 새내기 다문화 가족에게는 지역사회 커뮤니티나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교류하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이방인이니 배려받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려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정(情)의 문화가 있어서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다는 게 그이 지론이다.

3년 차 새내기 해녀인 그는 "삼춘들은 50∼60년 물질을 해 온 베테랑이라서 바다에 대한 경험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지혜도 많이 얻는다"며 해녀는 정말 멋진 직업이라고 자부했다.

겐터 씨는 "해녀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지 10년이 됐다"라며 "가족들을 위해 바다로 출근해온 이들의 삶과 문화를 더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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