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9-07 15:21:00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목(木) 판화는 평평한 나무판 위에 밑그림을 그린 뒤, 섬세한 손길로 여백을 깎아내며 시작된다.
나무의 결을 따라 그리고, 새기고, 찍는 과정인 셈이다.
판목(版木)이라 부르는 틀 위로는 불교,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이 담겼고 당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아로새겨졌다.
한국과 중국, 일본, 티베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각국의 먹 냄새 가득한 역사가 한자리에 모인다. 강원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이 준비한 가을 전시에서다.
한선학 고판화박물관장은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목판 인쇄의 시작인 고대 판목에 주목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이달 19일 개막하는 '아름다운 기록유산 - 동아시아 고대 판목' 전시는 박물관이 30여년간 수집한 소장품 가운데 대표 판목을 중심으로 100여 점을 선보인다.
유교 덕목의 실천과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 판목을 화로 형태로 만든 상자, 중국에서 제작된 호랑이와 까치 그림 판목 등이 공개된다.
일본 도쿄에 있는 정토종 사찰인 조조지(增上寺)에서 19세기 중반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만다라(우주 법계의 덕을 나타낸 불화) 목판도 전시한다.
한 관장은 "그동안 다양한 주제로 선보인 판목 전시를 종합하는 자리"라며 "박물관을 대표하는 판목을 총망라해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선보이는 판목은 눈길을 끈다.
살짝 휘어진 나무판 위에 음각으로 보살상을 새긴 판목은 조선시대 범종의 문양을 찍은 거푸집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며, 매우 드문 유물이다.
뒷면에는 범종을 장식하는 덩굴무늬와 연꽃봉오리 모양의 돌기인 유두가 새겨져 있다.
판화를 찍는 판목으로 알려진 이 유물은 한국 범종을 연구해 온 최응천 전 국가유산청장(당시 동국대 교수)이 10여년 전 가치를 새롭게 밝혀낸 것이라고 한다.
대한제국 시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호적명부 판목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한 관장은 "문의군은 1896년 전국을 13도제로 개정할 당시 충청남도에 포함됐다가 1906년 충청북도로 환원됐다"며 "10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록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경매에서 구입한 일본의 불교 경판도 전시에서 처음으로 관람객과 만난다.
한 관장은 "'가스가(春日) 대장경'으로 불리는 경판은 고려 대장경 판목과의 연관성 등을 고려할 때 동아시아 대장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소장품 6천500여 점을 담은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총 30권 규모의 소장품 전집은 연구자를 위한 보급형과 수집 애호가를 위한 감상형으로 나뉘며, 박물관 직속 고판화출판사에서 순차적으로 펴낼 예정이다.
연말에는 중국 현지에서 주요 판목과 판화 작품 100여 점을 소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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