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7-16 15:10:34
(용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백남준은 1992년 미국 뉴욕 스톰 킹 아트 센터에 야외 조각 'UFO를 기다리며'를 선보였다.
광활한 자연 속에 텔레비전(TV) 수상기 형태와 불상, 인조 꽃, 백남준의 얼굴을 본뜬 청동 마스크로 구성된 작품이다. 땅에 흩어진 낡은 TV와 이를 뒤엎은 자연은 오래된 기술 시대의 폐허로 보인다.
하늘을 바라보는 청동 가면과 부처는 지구라는 공간을 넘어 우주로부터 도착하지 않을 신호를 기다리는 백남준의 상상을 보여준다.
백남준(1932∼2006) 20주기를 맞아 그의 우주적 세계관을 동시대 예술과 연결하는 글로벌 미디어아트 축제가 16일 막을 올렸다.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는 내년 2월 14일까지 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Waiting for UFO)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백남준의 이름을 내건 첫 글로벌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다. 전시를 중심으로 퍼포먼스와 학술, 기술랩, 관객 참여 프로그램 등을 함께 선보인다.
행사 주제는 백남준이 별과 행성, 위성, 미디어 네트워크를 연결해 상상했던 우주적 세계관을 모티프로 한다. 백남준에게 우주는 단순히 지구 밖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 문화와 기술이 연결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는 열린 공간이었다.
페스티벌의 중심에는 두 개의 기획전 '별, 괘'와 '달들'이 있다. 두 전시는 각각 별과 행성, 달과 우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탐색한다.
내년 2월 14일까지 열리는 전시 '별, 괘'는 백남준의 우주적 상상력과 동양적 사유, 전자매체를 통해 변화하는 세계를 인식한 방식을 조명하는 전시다. 백남준의 야외 조각 'UFO를 기다리며'를 담은 영상을 비롯해 백남준의 작품 21점으로 꾸며졌다.
1991년 작 '버추얼 비너스로 향하는 우주선'은 알루미늄 구조와 네온, 13인치 TV 36대를 결합해 거대한 로켓의 형상을 만든 비디오 설치다. 쌓아 올린 TV 제일 위에는 석조 불두 조각이 놓여 있고, 화면에서는 불상과 악보, 공상과학적 이미지 등이 빠르게 교차한다.
오래된 조각과 전자기술, 과거와 미래의 이미지로 구성된 로켓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싣고 가상의 행성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시공간을 그려낸다. 중국 타이캉아트뮤지엄 소장품으로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1990년 작 '시리우스'는 6대의 8인치 TV를 방사형으로 배치한 비디오 조각이다. 중앙의 원판과 금속 프레임에는 '북두성', '남십자성'과 같은 천체와 관련된 문자가 쓰여 있다.
작품명은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항성인 시리우스에서 따왔다. 백남준은 화면에 흐르는 빛과 움직이는 이미지, 문자와 기호를 결합해 새로운 시리우스를 만들었다. 멀리 떨어진 별이 전자 신호와 이미지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재현한다.
10월 4일까지 펼쳐지는 또 다른 전시 '달들'은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백남준의 말에서 시작한다.
백남준은 과거 5만년 동안 인류에게 어두워진 뒤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달뿐이었다며 "그래서 사람들은 달을 바라봤다. 나는 이제 TV로 달을 창조해 보려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그의 말처럼 TV로 달을 구현한 작품이다. 1965년 뉴욕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는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의 주기를 12대의 TV로 형상화했다. 이후 2000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서는 'E-달'(E-Moon)이라는 영상이 추가돼 13대의 모니터로 새롭게 선보였다.
'거북'은 1993년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인 대형 작품이다. 166대의 TV 모니터를 거북이 형상으로 배열한 것으로 신화와 역사에 관한 백남준의 인문학적 사유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거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서 우주, 창조, 어머니, 지혜, 복 등을 상징하는 동물로 숭배받았다.
백남준은 미디어와 동물을 병렬 배치해 자연과 기술을 동등한 층위에 놓고, 거북의 신화적 상징성을 통해 세계 각지의 민속적 가치를 하나로 연결했다.
전시에는 백남준 외에도 김덕희, 박고은, 박소영, 우주여행자 언해피, 이지연이 참여해 동시대 작업으로 백남준의 우주를 새롭게 제안한다.
전시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개막 주간인 오는 20일까지 임용주 퓨처사운드랩의 '굉: 코스믹 휴먼 심포니'를 시작으로 채얼의 퍼포먼스와 김바울·카이나의 공연이 차례로 열린다.
특히 백남준의 생일인 이달 20일에는 국가무형유산 동해안별신굿 이수자 방지원이 15명의 굿패와 함께 '백남준 생일굿'을 벌인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 작품 '다다익선' 앞에서 시작해 백남준아트센터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다.
국내외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학술 프로그램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실험하는 기술랩도 마련된다. 관객 참여 행사도 함께 열려 관객들은 소리와 움직임, 연구와 기술, 참여를 통해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행사는 미술관 밖으로도 확장된다. PSK홀딩스 판교캠퍼스에서는 백남준 작품과 신진 미디어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NJP 라운지'가 운영되며, 이화여대와 협력한 'EMAP 2026',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상영회 '백남준 비디오 코스모스' 등 다양한 협력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된다.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은 서로 다른 인간과 문화, 매체와 사유가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 예술가였다"며 "이번 행사는 그의 예술을 과거에 머문 기념비가 아니라 오늘의 예술가와 연구자, 기술자, 시민이 함께 접속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는 열린 세계로 다시 만나고자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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