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연
| 2022-03-31 15:13:06
악보에 새긴 시대의 격랑…신간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베토벤은 독일 본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혁명의 격앙된 기운을 흡수한 베토벤은 프랑스 장군 보나파르트를 세습군주제를 완전히 물리칠 정치인으로 믿었다. 혁명을 악보에 옮겨 그에게 전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보나파르트는 스스로 황제 나폴레옹이 되는 길을 택했다. 베토벤은 그의 이름이 적힌 악보를 찢어버렸다.
신간 '역사를 만든 음악가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음악에 담고 때로는 스스로 역사가 되기도 한 서양 음악가 열세 명의 인생 여정을 추적한 책이다. 프랑스 저널리스트 겸 바이올린 연주자인 저자 로르 도트리슈는 "모든 음악가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역사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음악가들은 권력에 매혹을 느끼기도,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권력은 음악가들을 혁명과 선동에 이용하려 했다. 음악가들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이유다. 베토벤은 프랑스 장교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해달라는 후원자의 청을 거부했다가 보조금이 끊겼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독일 음악에서 유대인을 뿌리뽑기 위한 제3제국 음악원의 총재를 맡았다. 나치 선전장이었던 베를린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프랑스에서는 애국자 드뷔시가 독일의 침공에 격분했다. 그는 많은 나이 탓에 전장에 나가지 못하자 피란열차 안에서 분노를 담은 음표를 여권에 그려 넣었다. 암 투병 중에도 전사한 병사에게 헌정하는 곡을 썼다.
쇼스타코비치는 작품뿐 아니라 인생을 송두리째 시대에 빼앗긴 음악가로 역사에 남았다. 소련 공산당이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혹평하면서 그는 '인민의 적'이 됐다. '혼돈이 음악을 대체하다'라는 제목의 기관지 프라우다 1면 사설을 스탈린이 직접 썼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는 비밀경찰의 체포에 대비해 여행용 가방을 침대맡에 두고 살았다. 자신이 당을 지지한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해 형식주의를 제거하고 혁명을 기리는 군악풍의 작품을 만들었다. 교향곡 5번의 부제는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이었다. 그가 악보에 옮긴 건 공포였다. "스탈린의 무시무시한 대숙청이 세상을 온통 마비시키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살기로 작정한 한 남자의 메시지였다."
프란츠. 이세진 옮김. 296쪽. 1만7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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