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한국의 일부"…1948년 미군 기밀문서 첫 확인(종합)

전갑생 성공회대 연구교수, NARA 자료 수집해 동북아역사재단 기증
'독도 폭격 사건' 보고서·울릉도사 문서 등 222쪽 분량 발굴
"日 억지 주장 반박할 객관적 자료"…광복 직후 독도 연구 주목

김예나

| 2026-07-07 14:46:37

▲ 미국 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참석자들이 자료 내용을 보고 있다. 2026.7.7 mjkang@yna.co.kr
▲ "독도는 한국의 일부" 미 극동공군사령부(FEAF)의 조사 보고서 일부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독도 자료 기증한 전갑생 교수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전갑생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자료 수집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2026.7.7 mjkang@yna.co.kr
▲ 설명하는 홍성근 독도실장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자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2026.7.7 mjkang@yna.co.kr
▲ 미군 기밀문서 기록 '독도는 한국 일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자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2026.7.7 mjkang@yna.co.kr
▲ 독도 어선 폭격 사건 관련 기록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울릉도 주민 홍재현의 1947년 진술서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NARA 자료 기증한 전갑생 교수에 감사패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정용상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에서 열린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수집 미공개 독도 자료 기증식'에서 전갑생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와 감사패 수여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7.7 mjkang@yna.co.kr

"독도는 한국의 일부"…1948년 미군 기밀문서 첫 확인(종합)

전갑생 성공회대 연구교수, NARA 자료 수집해 동북아역사재단 기증

'독도 폭격 사건' 보고서·울릉도사 문서 등 222쪽 분량 발굴

"日 억지 주장 반박할 객관적 자료"…광복 직후 독도 연구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947년 9월 리앙쿠르 암(Liancourt Rocks)이 한국의 일부라는 것이 분명히 확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48년 6월 24일 미국 극동공군사령부(FEAF)가 작성해 기밀문서로 분류한 '독도 폭격 사건 보고서'(Report of Bombing of Liancourt Rocks).

당시 미군은 독도에 관해 이같이 명시한다. '리앙쿠르'는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고래잡이배의 이름으로, '리앙쿠르 암'은 독도를 지칭한다.

보고서는 그해 6월 8일 미 공군의 연습 폭격으로 독도에서 어민 14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나온 상황을 전하면서 독도를 '한국의 일부'로 본 셈이다.

함께 수록된 문서철에는 독도의 영유권에 관해 설명하는 울릉도사(현재 울릉군수)의 공식 문서, 주민 진술서 등도 포함됐다.

1948년 독도 폭격 사건 당시 미국 측이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기밀문서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미국 정부가 보관해 온 독도 관련 미공개 기록을 새로 발굴했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자료는 전갑생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확인해 수집한 222쪽 분량의 문서로, 최근 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시기를 주로 연구해온 전 교수는 1948년부터 1952년까지 미군이 작성한 문서 상자 1천60개를 조사하던 중 이 자료를 찾아냈다.

전 교수는 "독도 폭격이라는 단일한 사건에 대해 극동사령부, 극동공군, 제1항공사단 등 6개 제대의 조사·보고가 교차하는 문서군으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자료는 FEAF의 공식 보고서다.

해당 문서는 본문 3쪽과 여러 첨부 자료로 구성돼 있다. 당초 기밀문서로 분류했으나 이후 해제됐고, 현재는 '2급 비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자료를 분석한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은 "1948년 독도 폭격 사건의 최종 조사 기관인 FEAF의 최종 조사 보고서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홍 실장은 독도가 '한국의 일부'라고 명시한 부분에 대해 "1947∼1948년 미 당국이 독도를 명백한 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공식 문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 실장은 이 자료가 "일본 측의 '억지 주장'을 반박할" 핵심 자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도를 마치 일본의 영토인 것처럼 주장한 1949년 시볼드의 제안, 1951년 러스크 서한 등이 일시적으로 변질하고 왜곡된 결과에 불과하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사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서에는 당시 폭격 훈련을 하기 위해 '각 폭격 연습장'을 사용하려면 보름 전에 주한미군사령관(USAFIK)에 통보해야 한다는 점도 담겨 있다.

독도를 '한국 영토'로 보기에 한국 관할 당국에 사전 통보 의무를 명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재단 측은 전했다.

보고서와 함께 발견된 1946년 문서 역시 처음 공개되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울릉도 행정을 맡았던 울릉도사가 경상북도 지사에게 보낸 문서는 광복 이후 독도 관련 상황을 언급한 최초의 공문으로 여겨진다.

공문에는 독도가 울릉도 소속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중앙 군정청이 일본 정부와 교섭해 독도가 울릉도 소속임을 공표해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독도가 바다사자, 미역, 전복 등의 생산지라는 점도 언급돼 있다. 울릉도 주민들이 오랜 기간 독도 일대에서 생업 활동을 이어온 점을 실증하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대한제국 시기 울도군수 심흥택이 작성한 보고서 필사본도 주목할 만하다.

1905년 일본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하자 심흥택은 이듬해 강원도 관찰사 서리 이명래에게 이를 보고했고, 독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홍 실장은 "1947년 울릉도청 보관본보다 1년 전 필사본으로, 미국 (정부 기관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새롭게 발굴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번 자료는 독도 연구의 '빈칸'을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단에 따르면 광복 직후, 즉 1945∼1948년 시기에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거나 명확히 밝히는 1차 사료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재단 관계자는 "이번 발굴을 통해 광복 직후 한국과 미국 양측의 독도 관련 인식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자료 기반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재단은 향후 연구 내용을 담은 자료집을 발간하고, 서울 영등포 독도체험관의 기획 전시 등으로 자료를 공개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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