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 관점서 봐도 '보성사판'만 독립선언서 진본"

정경재 교수, 논문 발표…"'신문관판'은 후대에 수정된 자료"

박상현

| 2021-08-14 14:46:48

▲ 2019년 공개된 3·1 독립선언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독립선언서 보성사판(왼쪽)과 신문관판 [국가기록원 누리집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국어학 관점서 봐도 '보성사판'만 독립선언서 진본"

정경재 교수, 논문 발표…"'신문관판'은 후대에 수정된 자료"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현존하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국어학적으로 분석하면 최근 제기된 일부 역사학자의 주장처럼 '보성사판'만 진본이고 '신문관판'은 후대에 작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4일 학계에 따르면 정경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학술지 '진단학보'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독립선언서 보성사판과 신문관판의 한글 표기상 차이와 띄어쓰기 여부 등을 분석해 보성사판이 유일한 당시의 독립선언서이며, '신문관판 독립선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는 독립 선언 정신과 행동 지침을 천명한 문서다. 현재 남은 독립선언서는 약 10점인데, 인쇄 장소에 따라 보성사판과 신문관판으로 나뉜다. 국가기록원은 두 판본을 모두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했다.

국가기록원 설명에 따르면 학계에서는 두 판본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다만 두 독립선언서는 종이와 활자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 또 보성사판 독립선언서에는 국호가 '선조'(鮮朝)로 기재됐으나, 신문관판은 '조선'(朝鮮)으로 수정됐다.

하지만 최근 역사학계에서는 보성사판만이 1919년에 제작한 독립선언서라는 견해가 잇따라 나왔다. 습득 경위가 명확한 자료는 모두 보성사판이고, 민족대표 중 한 명인 김병조가 1919년 이후 펴낸 책자에 실린 독립선언서도 보성사판이라는 사실이 근거가 됐다.

정 교수는 고증 작업을 위해 1918년 신문관에서 간행한 잡지 '청춘'(靑春)에 게재된 최남선의 글과 보성사판·신문관판 독립선언서를 비교했다. 신문관은 최남선이 운영하고, 독립선언서를 조판한 곳이다.

그는 된소리 표기 양식을 살펴 보성사판은 ㅺ·ㅼ·ㅽ으로 썼으나, 신문관판은 ㄲ·ㄸ·ㅃ으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가운데 '청춘'의 최남선 글과 된소리 표기가 같은 판본은 보성사판이고, ㄲ·ㄸ·ㅃ은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없-' 뒤에 모음이 오면 보성사판은 '업스며'나 '업시'로 찍었으나, 신문관판은 오늘날 한글 맞춤법에 맞춰 '없으며'나 '없이'로 적었다고 소개한 뒤 최남선이 '청춘'에서 택한 표기법은 보성사판이었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최남선은 주시경 학파가 제시한 새로운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관습적 표기법을 유지했다"며 "문필가였던 최남선이 일반 민중에 배포하려는 독립선언서에서 그간 자신이 사용한 대중적 표기법을 버리고 새로운 표기법을 채택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보성사판은 문단을 시작할 때 여백을 두는 들여쓰기와 띄어쓰기가 적용되지 않았으나, 신문관판은 들여쓰기가 돼 있고 구절 단위로 띄어 쓴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남선이 '청춘'에 남긴 글은 대부분 띄어쓰기가 돼 있지 않으나, 들여쓰기는 한 편이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최남선은 국한문 혼용체는 띄어 쓰지 않고, 한글 표기가 주가 된 국문체에서는 띄어쓰기를 했다"며 "실질어를 한자로 표기한 독립선언서도 띄어 쓰지 않는 것이 최남선의 방식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어 "독립선언서는 분량이 길지 않고 한눈에 글 전체를 담을 수 있어 들여쓰기를 하지 않아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며 "'청춘'의 글은 길어서 들여쓰기를 통해 가독성을 높이고자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문장부호 사용 양상도 보성사판 독립선언서와 '청춘'의 최남선 글이 일치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문관판은 짧은 글 안에 일관되지 않은 어형이 혼재돼 있어 후대에 누군가가 원본을 현대적 표기에 맞춰 부분적으로 교정한 인쇄물일 가능성이 크다"며 "띄어쓰기 단위나 권점(글을 맺는 끝에 찍는 둥근 점)을 사용한 위치도 일관되지 않아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선언서 원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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