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과시 위해 '도덕' 내세우는 행위, 공적 담론 무너뜨려"

미국 대학 철학과 교수들이 쓴 '그랜드스탠딩' 번역 출간

성도현

| 2022-06-09 14:44:31

▲ 미국 대선 후보 TV 토론회 (PG) [김민아 제작] 일러스트


"자기과시 위해 '도덕' 내세우는 행위, 공적 담론 무너뜨려"

미국 대학 철학과 교수들이 쓴 '그랜드스탠딩'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언론 기사, 시사 토론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비롯한 각종 SNS 등에는 특정 사안에 분노하며 자신의 도덕적 가치가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넘쳐난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자신이 더 돋보이고자 같은 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진영은 감싸고 상대 진영에는 가혹한 비난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를 '그랜드스탠딩'(grandstanding)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낯선 용어이지만 미국 등 해외에서는 도덕성과 정치에 관해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자기과시를 위해 도덕적인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 바탕에는 인정 욕구가 깔려 있다.

미국 텍사스테크대 철학과 조교수 저스틴 토시와 볼링그린주립대 철학과 조교수 브랜던 웜키는 최근 번역 출간된 '그랜드스탠딩'(오월의봄)에서 "도덕적 이야기가 사회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면서도 얼마나 오용되고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를 주로 살핀다. 그랜드스탠딩이 공적 담론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그랜드스탠더(도덕적 자질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과시하는 자)는 진실을 좇거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을 갈구한다고 주장한다. SNS로 수천, 수만 명에게 자신의 도덕성을 얼마든지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도덕적 이야기는 욕망 충족의 도구가 됐다고 지적한다.

책은 "그랜드스탠더는 도덕적으로 영웅적인 무언가를 실제로 행함으로써가 아니라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어떤 단어를 말하면서 명성을 바란다"며 "그런 평판을 통해 도덕성에서만큼은 존경을 받을 거로 생각한다"고 규정한다.

그랜드스탠딩은 여러 가지 양상을 띤다고 책은 설명한다. 보태기(다른 사람의 말에 자신의 말을 추가하기), 치닫기(더 세게 주장하기), 날조하기(작은 일을 크게 문제 삼기), 강렬한 감정 표출, 무시 등 5가지가 있으며 거짓말과 무척 닮았다.

이런 그랜드스탠딩은 양극화, 냉소주의, 분노 피로라는 사회적 손실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랜드스탠딩이 오남용될수록 합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진다며 여러 사회과학적 연구를 근거로 해악을 짚는다.

특히 지난 70년간 미국에서 정치적 이념상 중도의 비율이 지속해 감소하고, 진보나 보수 비율은 계속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양극화는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의 의견을 처음부터 무시할 가능성이 높아 민주주의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저자들은 정치인들의 그랜드스탠딩도 설명한다. 대중이 정치인의 '정책'보다 '인성'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에 정치가 도덕성을 경연하는 장이 됐다며 "정치적 그랜드스탠딩은 정치 과정과 정치제도에 해롭다"고 주장한다.

책은 "공적 담론을 자기과시 도구로 접근하는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며 니체주의의 시각을 인용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탁월한 사람'은 선한 목표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도덕적 이야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위상을 얻으려는 일말의 노력에 아무 관심이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은 현대인의 일상에 침투해 있는 SNS로 인해 도덕적 이야기의 오남용에 노출되는 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고 인정한다. 다만 공적 도덕 담론이 개선될 수 있도록 애쓸 필요는 있다며 '인정 욕구 재설정'과 '믿음 바로잡기' 등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여러 대안을 제시한다.

김미덕 옮김. 332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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