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6-02 11:08:26
'다빈치' 장인이 되살린 나무와 꽃…"선배들의 손길 떠올렸죠"
'고종의 선물' 반화 복제품 완성한 국가무형유산 옥장 김영희 보유자
섬세한 기술 필요한 조각 1천여 개…조사 거듭하며 1년여간 작업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금빛으로 뒤덮인 가지 위로 초록빛이 어우러진다. 얇은 나무판을 오려 만든 잎들이다.
활짝 핀 꽃은 금빛 꽃술을 더했고, 옥을 깎아 만든 듯한 난초도 눈에 띈다.
너비 23∼24㎝의 금속 화반(花盤·꽃을 담도록 만든 자기)에는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아름다움이다.
오랜 기다림을 거쳐 다시 피어나는 꽃과 나무는 어떠할까.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 여정을 보여주는 '반화'(盤花)를 되살려 복제품을 완성한 국가무형유산 옥장(玉匠) 김영희 보유자는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떠올렸다.
김 보유자는 지난 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자료 조사와 준비 과정을 거쳐 약 1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내내 붙잡고 작업한 끝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화는 금속과 나무, 보석 등으로 꽃과 나무를 장식한 공예품을 일컫는다.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 사디 카르노(1837∼1894) 프랑스 대통령은 조선에 도자기를 선물했고, 고종(재위 1863∼1907)은 답례 선물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따르면 고종은 청자 대접 2점을 포함한 공예품, 반화 한 쌍, 역사 관련 서적을 보내며 우호 관계를 이어가길 바랐다.
이 가운데 반화는 1953년 사디 카르노 대통령의 후손이 파리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에 기증해 현재 프랑스에 남아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019년 한국 문화유산 실태 조사에 나서 '한국의 왕(roi de coree)이 선물했다'는 기록과 함께 반화 존재를 확인했다.
옥 가공 외에도 평소 손재주가 좋아 '다빈치'로 불리는 김 보유자지만, 반화를 되살리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김 보유자는 "왕실 장신구, 금속 가공 등 공예 기술이 필요한 작품"이라며 "당대 최고 장인들이 작업한 '신상'을 되살리는 게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2024년 가을 프랑스 현지를 찾아 유물을 직접 본 뒤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세월의 흔적이 쌓인 터라 손을 대기가 겁날 정도였어요. 단순히 복제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모습을 되살려야 했기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죠."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이뤄진 반화 두 쌍(총 4점)을 만드는 데 필요한 조각은 최소 1천개. 꽃잎 하나, 작은 꽃술 하나 완성하기까지 만만치 않은 시간이 들었다.
김 보유자는 부담보다는 '책임감'이 컸다고 했다.
그는 "선배 장인들의 손길을 생각하니 사명감이 앞섰다"며 "역사적 유물을 되살리는 기회가 왔으니 한 편으로는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타협할 수도 없었습니다. 장인의 손길에는 잔머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 묵묵히 할 뿐이죠. 휴가 한번 못 갔네요. 허허"
김 보유자는 "이번 작업은 한국과 프랑스 수교 140주년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이룬 일"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그는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반화: 상서로운 마음' 특별전을 기획한 곽희원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학예연구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2020년 '신(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전시를 맡아 반화 대여를 추진했던 곽 연구사는 유물 복제 및 복원 과정을 물심양면 도왔다고 한다.
곽 연구사는 "복제품이라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완성된 작품"이라며 "전통의 손길을 잇고 전승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보유자가 완성한 반화는 8월까지 국립고궁박물관과 덕수궁에서 전시할 예정이다.
덕수궁관리소는 향후 상설 전시로 반화를 소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 보유자는 "그 시절 반화를 통해 조선과 프랑스가 이어진 것처럼 (반화 복제품이) 양국이 협력하고 새로운 협업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