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창] "팔면 없어지잖아요"…닥종이 명인 1호, 작품 77점 기증

40년 한길 걸은 김미숙 작가 "내 손끝의 한국인 얼굴, 사회에 돌려드려요"
지문 없어질 때까지 빚은 닥종이 인형 마지막 전시회 마치고 종이나라박물관에

박현수

| 2026-06-02 14:44:45

▲ 대한민국 닥종이 명인 1호 김미숙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지난 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대한민국 닥종이 명인 1호 김미숙 작가. phyeonsoo@yna.co.kr. 2026. 6.1
▲ 김미숙 작가와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 김미숙(왼쪽) 작가가 1일 노영혜 종이문화재단 이사장에게 닥종이로 만든 인형을 전달하고 있다. 김 작가는 이날 자신의 작품 77점을 기증했다. [종이문화재단 제공]
▲ 마지막 전시회에서 작품들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김미숙 작가 [종이문화재단 제공]
▲ 김미숙 작가의 작품들 [종이문화재단 제공]
▲ 국내 최초 닥종이 인형 교재인 '닥종이 인형'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미숙 작가 [종이문화재단 제공]

[동포의 창] "팔면 없어지잖아요"…닥종이 명인 1호, 작품 77점 기증

40년 한길 걸은 김미숙 작가 "내 손끝의 한국인 얼굴, 사회에 돌려드려요"

지문 없어질 때까지 빚은 닥종이 인형 마지막 전시회 마치고 종이나라박물관에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별거 아니에요, 남보다 많이 만들고 만졌다는 거죠."

대한민국 닥종이 명인 1호 김미숙(79) 작가가 지난 1일 연합뉴스와 만나 40년 닥종이 인형에 바친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지난달 예술혼을 불태운 마지막 전시회를 마치고 전시작품 77점 전량을 종이문화재단(이사장 노영혜) 종이나라박물관에 기증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에서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닥종이 인형을 빚고 또 빚는 사이, 손가락 끝의 지문이 완전히 닳아 없어진 것이다. 지문은 한번 없어지면 재생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그는 미국 입국 심사 때마다 지문 인식이 되지 않아 곤욕을 치르곤 한다.

김 작가는 한국닥종이인형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미국 워싱턴에서 네 차례나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국제 무대에도 이름을 알렸다.

고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중일 국제포럼에서 포럼장 테이블마다 김 작가의 닥종이 인형을 전시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풀로 붙여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야 완성된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 보통 한두 달이 소요된다. 견본 없이 순수 창작으로만 제작되기 때문에 동일한 표정의 작품을 다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작가는 "찍어내는 게 아니니까 얼굴이 다 같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제작의 핵심은 역시 얼굴이다. 한지를 잘게 찢어 이마와 턱, 코 순으로 덧붙이며 형태를 잡아간다. 얼굴만 완성되면 몸체와 의상 작업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된다.

김 작가는 "닥종이 인형 속에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땀 흘리는 농부, 갈래머리 소녀 등 잃어버린 한국인의 모습을 발견했다"며 "인형을 만들면서 비로소 나의 참모습을 찾았다"고 회상했다.

그가 닥종이 인형을 처음 접한 것은 1984년 미국 이민 초기였다. 독일에 거주하는 김영희 닥종이 인형 작가의 에세이와 엽서를 보고 단번에 매료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직접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다. 엽서 속 인형 사진만 보고 크기를 가늠하며 독학을 시작해야 했다.

초창기에는 비싼 한지를 낭비할 수 없어 아들이 쓰던 컴퓨터 용지 파지로 연습을 반복했다. 김 작가는 "그 빳빳한 종이를 열심히 비벼대고 꼬아대다 보니 손이 어느새 상처로 가득해졌다"며 "손바닥의 굳은살이 채 이겨내질 못해 쓰라린 아픔을 경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인사동에서 한지를 가방 가득 들고 미국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연구에 매달렸다. 작품을 만들다 빨리 건조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오븐에 넣고 구웠던 것도 이 시절의 일화다. "다음 단계로 빨리 가고 싶은데 종이가 안 마르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죠."

그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1993년 KBS '아침마당'과 MBC 등에 출연하면서 전국적인 반향이 일었다. 방송 직후 수강 문의가 쇄도하자 자택에서 직접 강습을 시작했다.

이 무렵 종이문화재단과도 인연을 맺었다. 방송을 본 노영혜 이사장이 직접 연락을 취해왔고, 김 작가는 재단의 전국 지부 사범들을 대상으로 집중 교육을 진행했다.

김 작가는 "수강생들은 이미 종이접기를 가르치던 전문가들이라 습득이 굉장히 빨랐고, 덕분에 닥종이 인형이 금방 대중적으로 퍼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의 닥종이 인형 지도사 자격 취득 교재인 '닥종이 인형'(종이나라 발행)을 출간했다. 당시 완판된 이 책은 현재 절판되어 희귀본이 됐다.

이후 2006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공로상을 받았고, 2017년 '제1회 대한민국 종이접기 역사 포럼'에서 닥종이 명인 1호로 추대됐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닥종이 인형 작가 대부분이 그의 직간접적인 제자들이다.

김 작가는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평생 판매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인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양도한 10여 점이 전부다.

"팔면 돈은 들어오지만 내 분신 같은 작품은 없어지잖아요. 아까워서 도저히 못 팔겠더라고요." 지인에게 선물했다가 관리 소홀로 훼손되는 것을 보며 상심하기도 했다.

여러 기관에서 기증 요청을 받았지만,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종이나라박물관을 선택한 것도 "전문가들이 관리해야 작품이 오래 보존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가족들도 아쉬워했지만, 그의 뜻은 확고했다. 기증된 작품들은 종이나라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전통 한지에 대한 자부심과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진짜 한지는 닥나무를 삶아 가공하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기에 일반 종이와 원료부터 다르고 훨씬 질기다고 했다.

그는 최근 시중에 닥나무 대신 다른 나무를 섞어 만든 가짜 한지가 유통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유럽 고서 복원 분야에서는 일본의 화지가 최고로 꼽혔지만, 현재는 우리 한지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최근 42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영구 귀국한 김 작가는 무료로 닥종이 인형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가르쳐달라는 사람의 청은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는 게 이유다.

그의 전시를 보고 반한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건축 디자이너가 비행기 일정까지 연기해가며 보름 동안 배워 가기도 했다.

그는 닥종이 인형의 미래를 긍정하면서 인공지능(AI) 시대에 손끝 예술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강조했다.

"로봇에게 기술을 가르치면 입력된 그대로만 하겠죠.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는 이 예술적인 표정만큼은 AI가 결코 흉내 낼 수 없을 겁니다."

이번 전시를 끝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지 않겠다고 밝힌 그는 손끝으로 한국인의 혼을 빚어낼 미래의 제자들을 위한 '아름다운 재능 기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손을 많이 쓰는 작업이라 노인들의 치매 예방에도 아주 좋습니다.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면 앞으로도 대가 없이 제 기술을 온전히 나누어 줄 생각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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