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 2026-08-12 08:30:00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인기몰이 중인 배우 하영(33.본명 안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가문'이라는 집안 내력을 언급했다가 증조부 안상호(1872~1927)의 친일 부역 행적이 재조명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후손에게 연좌제의 굴레를 씌우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이 사안이 대중에 던지는 화두는 가볍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안상호와 같은 시대의 과학자로서 엄혹한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우장춘(1898~1959)의 인생 궤적을 보면 그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우리에겐 숨기고 싶은 과거사이지만, 우장춘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조선군 대대장 우범선의 아들이다.
국모 시해범과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김철수 등 독립운동가들과 뜻을 같이하며 평생을 한국인으로 살았다. 도쿄대를 나와 일본 농학을 이끌 학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해방이 되자 일본의 회유를 뿌리치고 현해탄을 건넜다.
그는 배추와 무를 비롯한 채소 종자의 자립 기반을 닦으며 식량난에 허덕이던 조국의 농업 발전에 여생을 바쳤다. 그가 일본에서 가져와 선보인 '씨 없는 수박'은 우리 손으로 우량종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심어준 상징이었다.
우장춘은 아버지가 남긴 오명을 자신의 삶으로 씻어내기라도 하듯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죄인의 아들은 그렇게 한국 농업의 아버지이자 세계적 육종학자로 기록되는 정반대의 유산을 남겼다.
반면 동시대의 과학자 안상호는 어엿한 조선의 아들임에도 뼛속 깊이 일제에 부역하는 길을 걸었다.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자혜의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왕실 의사가 돼 순종의 전의(典醫)를 거쳐 고종의 진료를 담당했다.
서울에 최초의 서양식 의원을 세운 그는 대한의사협회의 전신인 의사연구회를 결성하고 한성(서울시)의사회 초대 회장을 지내는 등 한국 근대 의학의 선구자로 의료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의술과 명성은 가문의 영달을 좇은 친일 행적으로 얼룩졌다. 대표적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에서 매국노 이완용과 함께 활동했고,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통해 자신이 사실상 일본인이라고 자처하며 내선일체 선전에도 앞장섰다.
1919년 고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독살설이 번졌을 때 왕의 진료를 맡았던 안상호에게 조선 왕실의 의혹과 민중의 분노가 쏟아진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일제에 빌붙어 부와 명예를 추구한 그의 삶이 의혹을 자초한 셈이었다.
물론 조상이 죄를 지었다고 그 허물을 후손에게 물어 책임을 지울 이유는 없다. 다만 대중이 하영에게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대대로 의사 집안이고 자신도 명문대를 졸업한 것을 내세우는 사람으로서, 인터넷 검색 몇 번이면 확인할 수 있는 증조부의 과오를 정말 몰랐겠느냐는 의문이다. 불편한 진실을 알고도 화려한 가문의 이력만 홍보했다면 공인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몰랐다면 자신의 뿌리와 민족의 아픈 역사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앞날이 창창한 배우에게 시대착오적인 연좌제의 굴레를 씌우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상이 남긴 공과는 누구든 사실 그대로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특히 그 유산의 혜택을 누린 후손이라면 더욱 깊은 성찰과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고 그로부터 물려받은 유무형의 자산을 당연시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역사와 대중을 대하는 기본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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