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3-06 14:37:13
'연극적 전시' 선보인 박신양…"내 그림의 시작은 그리움"
작업실로 꾸민 전시장에 배우 15명 등장…"박신양 작업장으로의 초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서 5월 10일까지…에세이집 '감정의 발견'도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십수 년 동안 그림을 그렸는데 무슨 마음으로 그렸나 제 감정에 주목해봤어요. 그리움이었죠. 러시아 유학 시절 만난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인데, 정확히는 대상이 아니라 자유롭게 예술을 논하던 당시의 감정에 대한 그리움이었어요.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서 취급받지 못하는 감정이지만요."
배우이자 화가로 활동하는 박신양의 두 번째 개인전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5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오랫동안 그려온 작품 약 150점이 걸렸다. 대부분 100호가 넘는 대규모 작품들이어서 400평에 달하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전관을 가득 채웠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기존 전시와 달리 연극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우선 전시 제목인 제4의 벽은 연극에서 무대와 관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뜻한다.
일명 '화이트 큐브'라 불리는 흰색 벽의 일반 전시 공간과 달리 연극의 무대처럼 전시 공간을 작가의 작업실로 상정해 연출했다. 이를 위해 콘크리트를 굳힐 때 쓰는 거푸집인 유로폼 1천500여개를 공수해 전시장 전면을 둘렀다.
또 작업실의 정령으로 분한 15명의 배우가 전시장을 자유롭게 누빈다. 이들은 물감, 붓, 팔레트 등 작업실에 있는 도구들의 정령이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령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호두까기 인형'의 설정에서 착안했다.
6일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박신양은 "전시는 관객이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보는 평면적 구조지만 연극은 단순히 극장이 아니라 특정 시기와 장소를 설정해 그곳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개념"이라며 "이번 전시는 전시장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장에 초대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쑈'라는 개념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대표작은 '키릴2'다. 세로 193.9㎝, 가로 130.3㎝ 크기의 대형 캔버스에 사람 얼굴을 그려 넣었다. 박신양이 그림을 그리게 만든 그리움의 대상, 러시아 친구 키릴이다.
두꺼운 물감이 뒤엉킨 거친 붓질로 화면 가득 얼굴을 채웠다. 노랑과 주황, 갈색이 뒤섞인 피부 표현 위로 짧고 빠른 터치가 겹겹이 쌓이며 강한 질감이 느껴진다.
박신양은 "그림을 그릴 때 선부터 그려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게 해야 하나 하는 의심이 있다"며 "사실 외형을 표현하는 선은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는 대상에 실제로는 선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과'는 박신양 그림에 등장하는 주요 대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통념적으로 떠올리는 사과의 모습과는 다르다. 사과라고 하면 보통 빨갛고 동그란 모양을 떠올리지만 그의 사과는 추상화처럼 해체돼 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미술 시간에 스케치북에 사과 하나를 그렸는데 '누가 사과를 이렇게 그리느냐'며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한다. 그 뒤로 그림과 담을 쌓았다.
그런 박신양이 다시 그림에 천착하게 한 소재도 사과다. 박신양은 안동에서 지내며 프랑스 출신의 두봉 레나도 주교와 가깝게 지냈다. 어느 날 두봉 주교가 사과 두 알을 선물로 줬는데 먹지 않고 작업실에 뒀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과가 점점 시들고 썩어가는 모습을 보며 저 모습이 사과의 본질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고 사과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박신양은 "동그랗고, 빨간색이어야만 사과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내 사과 그림은 좀 떨어져서 보면 동그란 빨간 사과보다 더 사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우사' 연작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투우사의 얼굴은 달려오는 소를 침착하게 노려보는 듯하다. 어둠 속에서 번져 나오는 색채가 긴장감을 더한다.
박신양은 배우이자 화가로 항상 뭔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그럴 때면 '표현'이라는 과제가 투우사에게 달려오는 소와 같다고 한다. 달려오는 과제를 받아내고 해결해야 하는 투우사에 자신을 투영했다.
동시에 '소' 연작도 많다. 소를 받아내는 투우사가 작가 자신이지만 투우사에게 달려드는 '소'의 움직임 역시 작가 자신이다.
'당나귀' 연작 역시 자신을 투영한 작품이다.
박신양은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 삶의 여러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며 "짐을 지고 있는 당나귀의 모습이 의연해 보였다. 짐을 지려고 태어난 인생 같아 안쓰러우면서도 내 모습 같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시와 함께 에세이집 '감정의 발견: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민음사)도 출간했다.
왜 감정이 중요한지, 예술가의 감정 표현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우리가 예술을 통해 왜 자신의 감정을 돌아봐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책이다.
박신양의 예술 철학과 함께 그림과 사진, 딸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 박신양 그림에 대한 미술 평론 등이 수록됐다.
박신양은 "내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그러려면 감정이 어떤 것이고 무엇인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고, 이를 알리고 싶어 책으로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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