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8-11 11:37:19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우리는 박 대통령의 첫 반응이 저격 미수를 자신의 정책에 대한 정당화이자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증거로 해석하는 것이리라고 본다."(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 관련 주한미국대사관 비밀 전문 중에서)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제29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노린 저격 사건이 발생한다.
대통령 저격은 실패했으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는 총탄을 맞고 숨졌다.
사건 직후 문세광이 재일 한국인이자 일본에서 생활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정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도의적·법적 책임을 추궁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주한미국대사관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주한미국대사관은 당시 사회 전반의 반응을 확인하면서, 육영수 여사의 국민장 영결식(8월 19일)이 열린 다음 날인 8월 20일 미국 국무부로 전문을 보냈다.
리처드 에릭슨 2세(1923∼2005) 당시 주한 미국 대사대리가 최종 승인한 문서는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과 육영수 여사의 사망을 둘러싼 각계 반응을 정리한 것이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비밀'(SECRET)로 분류한 문서에서 "침통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라며 "육 여사의 사망에 대해 국민적인 슬픔과 충격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대사관 측은 사회 전반의 반응, 정권 내부 동향 등을 상세하게 전하며 이번 저격 사건이 향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특히 주목했다.
대사관은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확고하고 강력한 조치" 혹은 "억압적 조치"에 나설지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1974년 당시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 정부가 박정희 정부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는 기밀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수집한 1974년도 주한미국대사관 작성 문서 1천200여 건을 전자 사료관 누리집에서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자료는 오랜 시간 기밀로 분류됐다가 최근 해제된 것으로, 국사편찬위원회 소속 편사연구사가 새롭게 확인해 정리 작업을 마쳤다.
허동현 위원장은 "이번에 공개하는 문서는 유신 체제의 한복판에서 지켜본 주한미국대사관이 관찰자의 시점에서 남긴 동시대의 기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료는 1974년 주한미국대사관이 본국 국무부에 타전한 외교 전문(Telegram)과 보고서, 비망록 등 다양한 문서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는 긴급조치 1·2호가 선포된 이후 미국 측의 반응도 있다.
1974년 1월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 비방과 유언비어 날조·유포 행위 등을 금지하고, 2호는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하도록 했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도구가 됐던 긴급조치 1·2호 등은 2013년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긴급조치 1·2호가 선포된 1974년 1월 8일 밤 본국에 올린 상황 보고에서 "박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사전 언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분석 결과, 대사관 측은 당시 박 대통령이 '절제'(moderation)를 포기하고 탄압으로 급선회했다고 규정했다는 판단을 전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긴급조치는 국내 문제인 만큼 침묵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했으나, 대사관은 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도 밝혔다.
"우리가 이곳에 관여하고 있는 이상 '논평 없음'은 충분하지 않으며…지나치게 수동적인 반응은 오히려 한국 정부가 억압적 조치의 길로 더 나아가도록 부추길 수도 있다."
다만, 대사관 측은 최종 판단을 워싱턴으로 넘겼고 1월 11일 당시 미국 국무부는 "현시점에서 논평한다는 것은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는 1974년 3월 1일 새 학기 개강을 앞두고 박정희 정부가 긴급조치로 '눌러 놓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평가한 내용도 담겼다.
대사관은 1974년 2월에 발생한 수원호 납북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최대한 활용하려는 선전상의 횡재"로 여기고 있다고도 전했다.
1974년 6월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1930∼2014)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과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의 재판 내용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 등도 문서로 공개됐다.
이번 자료는 1974년 한국의 상황과 미국과의 관계를 살펴볼 핵심 사료로 여겨진다.
1970년대는 유신 체제와 긴급조치 등으로 당대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국사편찬위원회 측은 설명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1970년대 유신 체제와 한미 관계의 역사를 다각도로 규명하고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끝)
[ⓒ K-VIBE.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