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래원
| 2026-01-23 14:28:29
장항준 감독 "단종 이야기, 뻔하지 않게 상상력으로 채웠죠"
유해진·박지훈 주연 '왕과 사는 남자' 연출…"유해진 대표작 됐으면"
"정사와 야사 잇고 역사 빈틈 메워, 김은희 작가 흥행 기대"…내달 4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어떻게 하면 뻔하지 않게 만들까' 하는 것이었어요. 역사의 빈 공간을 상상해서 채우는 설계 작업이 쉽지는 않았죠."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폐위당한 단종이 영월 유배지에서 보낸 삶의 마지막 시기를 상상해 그린 작품이다. 단종과 그의 대척점에서 왕위 찬탈을 이끈 권력자 한명회는 기존 역사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였지만,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단종(박지훈 분)이 강단 있는 모습으로, 한명회(유지태)가 풍채 좋고 서슬 퍼런 인물로 신선하게 묘사된다.
2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 감독은 "단종을 기존에 알려진 대로 나약한 이미지로만 그릴 거면 굳이 이 영화를 만들어서 재생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이가 어리고, 왕위에서 쫓겨나 비극적으로 죽었으니 나약하고 힘없는 인물이었을 거라는 해석은 단종을 정치적 결과에 따른 이미지로만 보는 것"이라며 "실제 단종은 영특하고 강단 있어서 할아버지 세종이 매우 총애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명회 캐릭터도 "'한 번도 보지 못한 한명회, 압도적인 무게를 지닌 한명회를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배우 유지태를 모셨다"고 했다.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광천골 촌장이자, 단종의 유배 생활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엄흥도(유해진) 역은 대부분의 서사를 상상력에 기반해 만들어냈다.
장 감독은 "매력적이면서도 적당히 인간적인 면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사와 야사의 기록을 이어 붙이고, 역사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꾸는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극 중 엄흥도는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촌부지만 단종과의 교감을 통해 점차 '의로운 길'을 고민하는 입체적 인물로 그려진다. 장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유해진을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구상했다.
장 감독은 "유해진은 촬영이 없을 때도 감정을 떠올리다 갑자기 눈물을 흘릴 정도로 역할에 깊이 몰입했다"며 "인물에 대한 판단이 굉장히 예리하고, 한 장면 한 장면을 진득하니 끝까지 파고들어 가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고 칭찬했다.
2002년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처음 만난 장 감독과 유해진은 '왕과 사는 남자'로 24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장 감독은 "'왕과 사는 남자'가 유해진의 부끄럽지 않은 대표작 중 하나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주요 서사를 새롭게 창작해내고 인물을 재해석하는 작업과 함께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광천골에 걸맞은 촬영 장소를 찾는 일도 까다로웠다.
장 감독은 "강원도 영월에서도 산 사이로 강이 굽이치는 곳을 어렵게 찾아냈다"며 "차량 진입도 힘들 만큼 외진 곳이었는데, 군의 허가를 받아 길을 내고 토목공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촬영 뒤 현장을 다시 원상복구 하는 데에도 세트 제작에 못지않은 비용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종을 보위하는 궁녀 매화 역으로 출연한 배우 전미도는 "감독님에게 세트를 전부 지었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원래 그 장소에 있던 고택이라고 생각했다"며 "세트를 철거해야 해서 아쉬울 정도로 그 장소가 주는 힘이 컸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장 감독의 아내인 김은희 작가는 영화 흥행을 조심스럽게 낙관했다고 장 감독은 전했다.
그는 "촬영이 끝날 즈음 김은희 작가가 현장에 다녀간 뒤 '이거 진짜 잘될 것 같다'고 말했다"며 "다른 작품 때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아마 현장 공기가 다르다고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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