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회화'가 돌아오기까지…파란눈 할머니도 감동한 3번의 방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 '매의 눈'으로 미공개 조선 회화 발견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유물…환수 위해 최선 다하겠다" 진심 전해

김예나

| 2023-04-04 10:09:35

▲ 기증서 전달식 모습 왼쪽부터 이애령 국립광주박물관장, 게일 허 여사,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게일 허 여사와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전 미국사무소장(현 특임연구관) 김 전 소장이 소장한 미술품을 설명하면서 각종 자료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진규 '묵매도'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전 미국사무소장(현 특임연구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허련 '천강산수도 병풍'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기증서 전달식 모습 왼쪽부터 이애령 국립광주박물관장, 게일 허 여사,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 [국립광주박물관·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 관리소가 내부 전시 공간 등을 관리·운영하고 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명품회화'가 돌아오기까지…파란눈 할머니도 감동한 3번의 방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 '매의 눈'으로 미공개 조선 회화 발견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유물…환수 위해 최선 다하겠다" 진심 전해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격조가 있는 그림이네. 그런데 저게 누구 그림이지?"

지난해 6월 초.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한 주택을 방문했을 때 김상엽 당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장(현 특임연구관)의 눈에 그림 하나가 들어왔다.

얼핏 봐도 예사롭지 않았던 그림은 1층 복도 구석에 걸려 있었다.

조선 후기 화가 소치(小痴) 허련(1808∼1893)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책까지 낸 그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김 전 소장은 그림을 소장한 80대 미국인 여성에게 말했다. "이 그림은 꼭 조사해야 합니다."

그가 '매의 눈'으로 찾아낸 작품은 김진규(1658∼1716)의 '묵매도'(墨梅圖).

조선 최대 서화 컬렉션으로 평가받는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 속 하나라 추정되는 작품이었다.

김 전 소장은 4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미국인 할머니가 한국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한 마음으로 찾아뵈었는데 놀라운 작품이 줄줄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당초 게일 허 여사가 조언을 요청한 그림은 허련의 '송도 대련'(松圖 對聯)과 '천강산수도 병풍'(淺絳山水圖 屛風) 2건이었다.

2021년 세상을 뜬 남편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림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이웃에 살던 한국인 가족을 찾았다. 미국 미주개발은행(IDB)에 파견된 고광희 기획재정부 국장의 집이었다.

고 국장은 그 자리에서 한국대사관 등 지인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이후 연락을 받은 워싱턴 한국문화원이 재단 미국사무소에 내용을 전달했고, 허련 전공자인 김 전 소장이 직접 나서게 됐다.

김 전 소장은 "허련 작품만 생각하고 있는데 더 놀라운 작품이 나오니 마음이 바빴다"며 "재단 본부에 '석농화원' 작품일 수 있다고 보고하면서 전문가에게 빨리 자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열흘 뒤 게일 허 여사의 집을 찾아 그림의 가치를 설명하고 기증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게일 허 여사가 소장품 중 하나인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를 보여주자 그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문인 화가 신명연(1808∼?)이 그린 이 그림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허련 그림만 보러 갔다가 '석농화원'의 낙장(落張·빠진 부분) 추정 그림을 발견했죠. 또 갔더니 중요한 작품이 또 나왔어요. 3번째 방문을 약속하면서 할머니께 제대로 설명해 드리고 설득하겠다고 마음먹었죠."

김 전 소장은 6월 말 게일 허 여사와 만나 작품 4건 모두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싶다고 설득했다.

그는 "솔직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경매에 나가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유물이고 환수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털어놨다.

"혹시나 그림을 팔겠다고 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속이 말이 아니었죠. 진심으로 길게 말씀드렸는데 1∼2초 뒤쯤 '기증하겠습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웃음)

게일 허 여사는 재단 측이 3번이나 방문하며 작품의 내용과 의미, 문화재적 가치를 상세하게 설명한 데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당초 생각했던 2건이 아니라 총 4건의 회화 작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소장은 게일 허 여사의 평소 가치관이 큰 도움이 됐다며 공을 돌렸다.

경제학을 공부한 게일 허 여사는 아메리칸대, 메릴랜드대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다 은퇴한 뒤 16년간 미국 스미스소니언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다고 한다.

김 연구관은 "평소 예술은 개인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고, 공익을 위해 공유해야 한다 생각하셨다고 한다"며 "이번에 기증한 작품도 더 많은 한국인에게 알려지길 바라셨다"고 전했다.

"작년 8월쯤이었나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우리가 소유한 것은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요 ."(웃음)

재단에 따르면 올해 3월 16일 기준 재단 해외 사무소에서 환수한 문화유산은 총 19건(305점)이다. 이 가운데 소장자로부터 기증받아 환수한 사례가 11건, 유물 점수로는 295점에 달한다.

조선시대 불화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인물 묘사가 섬세한 '석가삼존도'(釋迦三尊圖), 환수 이후 1년도 채 안 돼 보물로 지정된 '이선제 묘지'(李先齊 墓誌) 등이 기증 방식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해외 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미국사무소는 재단 본부에서 파견하는 직원 2명과 현지에서 채용한 3∼4명, 일본사무소는 파견 1명과 현지 직원 1명이 근무 중이다. 이들을 모두 합쳐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김 전 소장은 "현지에서 다양한 정보를 얻고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며 "해외 사무소의 역할이 크고 중요한 만큼 미국, 일본뿐 아니라 유럽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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