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 2026-04-02 14:21:28
[동포의 창] 아버지 눈물 닦아준 아들의 '1분 영상'…200만이 울컥한 한인식당
김선주 아르헨티나 한식당 '닥코' 대표의 웃픈 '인생 2막'
실패 딛고 일어선 '아버지의 꿈' 담은 SNS 영상 현지서 돌풍…식당도 문전성시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이 사람은 제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요리사라는 어린 시절의 꿈을 드디어 이뤘습니다."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아들이 올린 1분짜리 영상이 아르헨티나의 한적한 골목길, 낡은 건물에 숨어있던 한식당을 기적으로 이끌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원단과 실을 만졌던 이민자 아버지가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사업이 무너지며 우울증에 빠졌지만, 뜨거운 기름 솥 앞에서 잊고 지냈던 자신의 꿈을 다시 붙잡았다.
외환딜러로 30년 직장생활을 하다 명예퇴직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식당 '닥코'(Dakko)를 개업한 김선주(54) 대표는 1일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짙은 회한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우울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한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척박한 땅에서 닭을 튀기며 제2의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식당 문을 연 지 불과 6개월, 이제는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 식당의 성공 뒤에는 '가족의 사랑'과 'SNS의 힘', 그리고 '한류 열풍'이라는 세 박자가 맞물려 있었다.
김 대표의 식당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아들이 휴대전화로 찍어 올린 SNS 영상 하나였다.
남편 박규호(54) 씨는 오랫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의류 수입업에 종사해 온 사업가였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불안정한 정세가 발목을 잡았다.
정권 교체와 함께 통관 절차가 갑자기 막히면서 애써 들여온 의류가 재고로 쌓였고, 야심 차게 시작한 원단과 실 사업마저 팬데믹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수금이 불가능해지면서 경제적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평생 가족을 위해 달려온 가장의 마음에는 깊은 우울증이 찾아왔다.
사업 실패의 좌절 속에서 그를 건져 올린 것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요리사'라는 꿈이었다. 팬데믹 기간 집에 머물며 가족을 위해 요리를 시작한 박 씨는 어느 날 김 대표와 아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어릴 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는 그의 진심에 가족들은 처음엔 결사반대했지만, 결국 응원을 보냈다. 이후 박 씨는 미국 LA와 멕시코를 여행하며 시장 조사를 마친 뒤, 한국에서 정식으로 한국식 치킨 조리법을 배웠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년 넘게 적당한 가게 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던 김 대표는 결국 아무도 찾지 않는 막다른 골목의 100년 넘은 낡은 건물을 임대해 1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리모델링했다.
우여곡절 끝에 5개월 반이 걸려 지난해 10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카바지토 지역의 한적한 골목에 마침내 한국식 치킨 전문점 겸 한식당 '닥코'가 문을 열었다.
그러나 개업 초기, 입지 조건이 나빴던 탓에 손님의 발길은 뚝 끊겨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나선 이는 아들 박마르코스(26) 씨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국립대(UBA)에서 사회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식당의 서사를 담은 영상을 기획했다.
아들의 담담한 내레이션과 함께 이민자로 살아온 아버지의 굴곡진 삶,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묵묵히 닭을 손질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은 현지 누리꾼들의 심금을 울렸다.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폭발적이었다. "눈물이 난다", "가족의 사랑이 느껴진다", "꼭 방문해서 응원하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해당 영상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합산 조회수 200만 회를 돌파했고, 37만 개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SNS의 돌풍은 전통 매체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유력 일간지 '라나시온'(La Nacion)이 직접 부자를 인터뷰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현상의 본질을 '한류의 저력'에서 찾았다. 그는 "우리가 만든 영상이 촉매제가 되었지만, 그 안에는 현지인들이 한국 문화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구가 깔려 있었다"며 "스토리가 있는 SNS 홍보가 아니었다면 월세조차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식당을 고객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식당 운영은 무너졌던 가정의 온기도 되찾아주었다. 이전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 달은 중국, 한 달은 아르헨티나로 오가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부재와 고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현지 문화에 동화되어가는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할 때가 많았다.
"아들은 아빠랑 대화하는 것조차 피했고, 남편은 아들이 편한 것만 찾는다고 나무랐어요.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죠."
하지만 식당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아들은 아버지가 뜨거운 기름 앞에서 닭을 튀기고, 거친 손으로 채소를 다듬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주방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비로소 이민자 가장의 무게를 읽어낸 것이다.
아버지 또한 식당의 성공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아들의 진심을 확인했다. 이제 두 사람은 누구보다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자 다정한 부자 관계로 돌아왔다.
현재 가게에는 직원 7명과 아들이 경영을, 김 대표는 고객 응대를 담당하고, 남편 박 씨는 오로지 주방에서 요리에만 매진한다. 주력 메뉴인 한국식 치킨 외에도 비빔밥, 불고기, 제육볶음 등 정갈한 한식을 선보인다.
주말이면 SNS 영상을 보고 찾아온 현지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번호표를 받아 한참을 대기해야 할 정도다.
김 대표는 한 고객이 "가족들이 K-드라마를 좋아해 나도 즐겨 보게 됐는데, 최근 '폭삭 속았수다'를 보고 펑펑 울었다"면서 "한국 드라마에서 본 '치맥'을 꼭 경험해보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김 대표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아르헨티나의 가혹한 경제 환경 때문이다. 소득세 35%, 부가가치세 21% 등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이윤을 남기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인건비 부담도 상당하다.
특히, 살인적인 물가 상승은 경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김 대표는 "음식값은 한국의 두 배 수준인데 소비력은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과거 동포들의 주력 사업이었던 의류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요식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이 역시 쉬운 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 행사에 참석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수십 년 전 차세대 대표로 한국을 찾았던 동료들이 이제는 각국에서 성공한 중견 기업인이 되어 그에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직장생활만 30년 해왔기에 제 이름을 걸고 재능을 온전히 펼쳐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이번 한국 방문이 제 인생의 마지막 행사가 아니라, 또 다른 20년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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