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10-06 13:00:01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히고 맙니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의 길을 걷게 된 송암 박두성(1888∼1963)의 삶은 1913년 1월 제생원 맹아부 학생들과 만나면서 크게 달라진다.
당시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우리 말과 글이 아닌 일본어 점자만 배울 수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는 점자 체계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1923년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해 한글 점자 연구에 매진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자음과 모음, 숫자가 담긴 점자를 완성한 건 1926년.
조선시대 세종(재위 1418∼1450)이 완성한 '훈민정음'의 뜻을 이어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가 되길 바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의 탄생이었다.
훈맹정음 반포 100년을 맞아 6개의 점으로 이뤄진 한글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배움과 삶, 그리고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꿨는지 되짚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 송암점자도서관이 함께 7일 인천 연수구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선보이는 특별전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이다.
전시는 엄정순 작가의 대표작 '코 없는 코끼리'로 시작된다.
작가는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뒤 시각장애인 어린이에게 실제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코끼리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해 왔다.
관람객들은 말 그대로 코가 사라진 '코 없는 코끼리 no.7' 작품을 만지면서 '본다'는 행위의 의미와 볼 수 없으면 어떻게 형태를 상상할지 생각해볼 수 있다.
전시는 손끝에서 시작된 점자의 이야기를 찬찬히 소개한다.
프랑스 출신 교육자 발랑탱 아위(1745∼1822)가 1786년 저술한 '시각장애인 교육에 관한 시론' 책을 포함해 세계 점자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러 자료가 공개된다.
발랑탱 아위는 1784년 파리에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학교를 세웠으며, 손으로 읽는 돌출 문자를 제시하며 시각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각장애인 학교의 학생이었던 루이 브라유(1809∼1852)가 고안한 6점식 점자판, 샤를 바르비에(1767∼1841)의 12점식 점자판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전시의 중심은 한글 점자 관련 자료다.
2020년 시각장애인 관련 자료로는 처음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 중 11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1926년 반포한 한글 점자표, 한글 점자를 교육하기 위한 자료, 박두성이 사용한 점자 타자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점자를 금속 인쇄판에 찍어내는 제판기는 점자 한 글자를 자판으로 친 다음 발로 패달을 밟아 새기는 방식으로, 1933년 일본맹인협회가 기증한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대한맹인사업협회가 1940년대 시각장애인 교육의 필요성과 단체 설립 이유를 소개하고자 작성한 '앞 못 보는 이와 그의 친구들에게 드림' 글도 주목할 만하다.
박물관 관계자는 "한글 점자가 문자의 역할을 넘어 시각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넓혀 온 시간의 기록도 전시에서 소개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누구나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도록 꾸몄다.
설명문에는 점자를 함께 표시했고, 주요 자료는 관람객들이 만져볼 수 있는 촉각 모형을 함께 뒀다. 점자책과 촉각책을 활용한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김명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장은 "훈맹정음은 여섯 개의 점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읽고 쓸 권리를 돌려준 문자"라며 손끝과 귀로도 문자의 가치를 느끼길 기대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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