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현
| 2026-05-27 14:19:48
거문고는 더블베이스, 소금은 플루트로…재창작된 '영산회상'
조선 풍류음악에 '수행자 여정' 서사 입혀…조이오브스트링스 연주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오케스트라가 서양의 신화나 문학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전통 악기를 배제한 오케스트라가 한국적 서사를 들려주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지난 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가 창단 30주년을 맞아 선보인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 영산회상'은 청중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사했다.
영산회상은 조선 후기 연주되던 풍류음악으로 '영산회상불보살'이라는 불교음악에서 유래했고, 수백 년간 기악화되며 유교와 도교 사상이 가미됐다. 9개의 작은 곡이 모여 하나의 곡을 이루는 모음곡이며 거문고·가야금·해금·피리·대금 등이 편성된다.
제목에 '변형'이란 뜻의 그리스어 '메타모르포시스'가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작곡가 김인규는 영산회상을 오롯이 서양 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기존 곡을 다듬어 서양 악기와 전통 악기가 함께 연주하거나, 우리 가락을 그대로 서양 악기 버전으로 옮기는 것은 흔히 있었던 시도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특징은 영산회상의 거대한 구조와 선율을 살리면서도 서양식 폴리포닉(다성음악)·호모포닉(화성음악) 기법 등을 짜 넣어 통째로 새로운 창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이날 공연에서 전통 악기 소금(小笒)은 플루트, 피리는 오보에, 대금은 클라리넷과 같은 식으로 대응 연주됐는데, 영산회상에서 중심이 되는 거문고의 역할을 한 베이스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더블베이스 연주자는 거문고 연주에서 쓰이는 대나무 채인 '술대'를 가지고 거문고 현을 뜯듯이 연주했다. 더블베이스 소리는 우리 현악기의 고요하면서 낭랑한 소리로 변모해 작품 전반에 깔린 전통적 정서를 느끼게 했다.
작곡가는 영산회상을 새롭게 창작하며 '수행자의 구도 여정'이라는 서사를 입혔다.
수행이란 주제는 영산회상이 원래 불교 음악이라는 기원에 착안했다. 이에 맞게 곡은 5악장으로 개편됐다. 수행자가 산에서 내려와 일출을 보며 느끼는 고양감을 표현한 1악장 '하산'에서 출발해 군중이 가득한 거리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5악장 '입전수수'로 끝난다.
공연에선 악장별 줄거리에 맞는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수행자가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며 꿈을 꾼다는 내용의 2악장 '호접지몽'에선 다른 악기들이 잠시 연주를 멈추고 호젓한 바이올린 독주가 처연하며 덧없는 꿈의 세계를 표현했다.
속세의 번잡함과 고통을 표현한 3악장 이후부터는 전통 가락에선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팀파니의 우레와 같은 연주가 울렸다.
줄풍류(현악기가 주를 이루는 풍류)인 영산회상에서 타악기의 음은 통상 크게 튀지 않지만, 공연에선 수행자가 느끼는 번뇌와 깨달음을 표현하기 위해 팀파니로 감정을 고조시킨 것이 특징적이다.
공연에 객원 악장으로 참여한 바이올리니스트 심정은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서양 음악을 배워온 연주자로서 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더 많은 연주자와 우리 음악은 어떻게 연주돼야 하는가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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