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9-01 14:14:29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거미줄을 닮은 유리구슬 구조물, 식빵 봉지를 묶는 빵 끈으로 만든 이불, 발바닥 모양의 비닐을 겹겹이 쌓아 만든 푸른 풍경. 쉽게 지나치거나 버려지는 재료가 오랜 손길을 거쳐 한옥 공간을 채운다.
포도뮤지엄은 오는 2일부터 서울 삼청동 선혜원에서 모나 하툼(74), 김윤수(51), 최성임(49)의 3인전 '흔들리는 것들의 안부'를 연다. 지난해 김수자의 장소 특정적 설치 '호흡-선혜원'에 이은 선혜원 아트프로젝트 두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는 가볍고 연약한 재료가 반복되는 손의 움직임과 시간을 거치며 새로운 밀도와 존재감을 얻는 과정에 주목한다. 연약한 재료와 사소한 생활의 잔여물은 잇고 감고 자르는 과정을 거쳐 쉽게 사라지지 않는 시간의 기록으로 바뀐다.
서로 다른 세 작가의 작업은 오래된 삶과 기억이 축적된 선혜원과 만나 일상 속 노동과 돌봄, 생존의 흔적을 드러낸다.
팔레스타인계 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모나 하툼은 한옥 서까래 아래에 설치작품 '웹'(Web)을 선보인다. 스테인리스 케이블에 1천200개의 매달린 투명 유리구슬이 거대한 거미줄처럼 공간을 가로지른다.
거미줄은 몸을 숨기는 집이자 먹이를 붙잡는 사냥의 장치다. 1층에서 올려다보면 '웹'은 보호막이나 별자리처럼 보이지만, 2층에서 내려다보면 먹이를 기다리는 포획자의 시선으로 다가온다.
하툼은 아름답고 섬세한 구조 안에 보호와 위협, 안식과 포획이 공존하는 긴장을 담았다.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집과 신체, 경계와 권력의 문제를 다뤄왔다.
전시장에서 만난 하툼은 "설치작품은 어떤 공간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진동을 만든다"며 "선혜원의 서까래와 기둥, 자연 풍경 속에서는 작품의 가벼움과 연약함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 같다. 아름다움 뒤에 불길함이 있는 상반됨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성임은 식탁에서 쓰고 버려지는 빵 끈을 엮어 만든 대형 설치 '황금이불'을 내놓았다. 480㎝×620㎝ 크기의 작업은 수없이 이어 붙인 빵 끈이 넓은 직물처럼 펼쳐져 이불 같은 형태를 이룬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재료를 모아 연결해 온 작가는 가사와 육아, 돌봄과 창작이 겹치는 시간을 작업에 담아왔다.
네 아이를 키우며 자투리 시간마다 빵 끈을 잇고 짜온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던 노동을 만질 수 있는 물질로 바꾼다. 황금빛 표면에는 일상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고 창작을 이어온 시간의 흔적이 배어 있다.
한옥의 대청처럼 안과 밖이 만나는 로비에 놓인 황금이불은 생활과 창작, 사적인 몸과 바깥 세계의 경계를 잇는다.
최성임은 "이불은 아침에 눈을 뜨면 처음 만나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는 풍경이자 나를 덮어주는 큰 존재"라며 "일상을 재현하기보다 사물의 기능과 형태를 전환해 일상의 다른 면,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윤수의 '바람의 표면' 연작은 여러 사람의 발바닥 윤곽을 유모차 방풍막에 쓰이는 얇은 파란 PVC 비닐에 옮겨 오린 뒤 수천 겹 쌓은 작업이다.
작가 자신과 가족, 지인들의 발바닥 윤곽을 오려내 쌓은 비닐은 접착제 없이 재료 자체의 장력으로 형태를 유지한다.
한 장일 때는 투명한 비닐이 켜켜이 포개지면서 짙은 푸른빛이 드러나고, 처음의 발 모양은 점차 하나의 덩어리로 변한다.
골판지를 가늘게 잘라 오랜 시간 감고 이어 붙인 '바람(투명한 사유에 관한 조각)'도 선보인다.
김윤수는 처음 자기 발바닥과 가위 등 일상 사물의 형태를 따라 골판지를 감기 시작했지만, 반복적으로 층을 더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윤곽은 점차 흐려진다. 가볍고 쉽게 휘는 골판지는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굴곡을 만들며 토기처럼 유기적인 부피를 지닌 조각이 된다.
김윤수는 "발은 인간이 자연과 접점을 이루는 부분"이라며 "대지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인간이 딛고 설 수 있는 중요한 신체"라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선혜원은 SK그룹 창업주 고(故) 최종건 회장이 1968년부터 사저와 개인 연구소로 사용한 한옥이다.
이후 그룹 인재 육성 공간으로 쓰이다가 문화 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최근 방탄소년단(BTS) 신곡 '스윔'(SWIM)의 라이브 영상 촬영 장소로도 알려졌다.
전시는 10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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