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7-14 14:08:22
1.2m 높이 보물 불상, 첫 CT 촬영했더니…머리 안 복장물 확인(종합)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 조사 위한 '세계 최대' 원통형 CT 도입
최대 3m 유물도 가능…"이쑤시개로 시작했던 보존과학, 컬러TV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흰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가운데에 검사대가 놓여 있다. 그 위에 오른 건 다름 아닌 금빛 부처님.
서울 종로구 창신동 지장암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보물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평소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지만, 이곳에서는 누워 있다.
가운데가 뚫린 원형의 기기가 '삐'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이자 컴퓨터 화면에는 그간 보지 못했던 불상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통으로 된 나무를 깎아 속을 파낸 흔적, 머리 부분을 고정하기 위해 쓴 못, 그동안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머리 안 복장(腹藏) 유물까지….
201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하는 '건강검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도입한 원통형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를 활용해 400년 역사를 품은 지장암 목조불상의 내부까지 들여다본 셈이다.
원통형 CT 작동을 시연한 양석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머리 부분에 종이 혹은 직물로 추정되는 복장물이 남아있는 사실을 처음으로 찾아냈다"고 말했다.
양 학예연구사는 사전에 정밀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며 "얼굴을 따로 만들어서 붙인 흔적, 불상 안에 물건을 넣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공간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14일 처음 언론에 공개된 원통형 CT는 세계 최대 수준으로 평가된다. 독일의 한 업체에 주문 제작했으며, 장비 가격만 약 23억원에 달한다.
기존의 CT는 조사 대상이 놓인 검사대 자체가 회전하면서 촬영하는 방식인 반면, 원통형 CT는 유물이 움직이지 않고 엑스레이(X-ray) 발생 장치가 움직이는 식이다.
유물을 안전하게 둔 채 1천300만 화소의 고해상도 영상을 얻을 수 있다.
기존 장비로는 조사가 어려웠던 대형 문화유산도 다룰 수 있는데 직경으로는 최대 1.1m, 길이로는 3m에 이르는 유물도 가능하도록 디자인했다.
앉은 높이가 117.5㎝, 무릎 너비가 82㎝인 지장암 목조불상도 거뜬한 셈이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도 원통형 CT를 보유하고 있으나 최대 적용할 수 있는 직경(도쿄박물관은 약 1m)을 고려하면 '세계 최대' 원통형 CT라고 박물관은 전했다.
천주현 보존과학부장은 "기존의 CT 2대와 함께 소형 장신구부터 대형 문화유산까지 여러 유물을 조사실 한 곳에서 연구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됐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원통형 CT를 활용하면 유물의 크기, 손상 여부와 관계없이 정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형 목조 불상, 전통 목가구 등 목재 문화유산의 나이테(연륜)를 조사해 '한국 목조 문화유산 연륜 연대기'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는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
양 학예연구사는 "지장암 목조불상의 나이테를 살펴본 결과 180년 정도"라며 "건조 기간 등을 고려하면 수령이 200년 이상된 나무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대형 불상 등을 중심으로 원통형 CT를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원통형 CT는 X-ray 발생 장치가 약 220도 회전하면서 약 20㎝씩 움직이며 촬영하는데 불상 하나를 정밀 조사하는 데 보통 5∼6시간이 소요된다.
3차원(3D) 데이터 정보량만 해도 1.7 테라바이트(TB·1천24기가바이트)에 달해 장비를 계속 가동하면서 많은 유물을 다루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CT 장비를 다룰 전문 인력도 더 필요한 상황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76년 국립박물관에서 보존과학이 시작됐을 때는 이쑤시개 하나 들고 시작했었다"며 "보존과학센터의 큰 경사"라고 힘줘 말했다.
유 관장은 문화유산 분야에서 CT가 도입됐을 당시를 '흑백 텔레비전'을 마주한 경험으로 설명하며 "원통형 CT는 컬러 텔레비전을 새로 장만했을 때의 감동"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은 앞으로 고고학, 미술사, 목재 해부학, 연륜 연대학, 디지털 복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원통형 CT를 활용해 조사·연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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