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
| 2026-06-24 13:46:22
조국 무너지자 펜 대신 총 들어…佛 역사가 블로크, 팡테옹 안장
53세에 레지스탕스 합류했다가 게슈타포에 체포…총살 순간 "프랑스 만세"
유언처럼 남긴 저서 '이상한 패배'…마크롱도 인용한 '패배주의' 경고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20세기 프랑스 역사학을 대표하는 역사가이자 나치 점령기에 레지스탕스(저항군)로 활동하다 처형된 마르크 블로크(1886∼1944)가 국가 최고 영예의 전당인 팡테옹에 헌정됐다.
프랑스가 국가적 영웅에게만 허락되는 '팡테옹'에 역사학자가 안장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3일 AFP통신에 따르면 블로크와 그의 아내 시몬 비달을 상징하는 두 개의 관이 프랑스 정부의 주재로 파리 중심가의 팡테옹에 운구됐다.
팡테옹은 1758년에 루이 15세의 서원에 따라 파리 중심가에 건립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성당으로 빅토르 위고,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앙드레 말로, 퀴리 부인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과 영웅 80여명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블로크는 프랑스 중부의 한 마을 묘지에 묻혀 있으며, 유족의 뜻에 따라 실제 유해는 이장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추모 연설에서 블로크를 "계몽주의의 인간"이자 "그림자의 군대"를 선택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림자의 군대는 나치 점령기에 활동한 프랑스 레지스탕스를 뜻한다.
알자스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블로크는 역사 연구에 경제학·사회학·인류학을 접목하며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1929년 동료 역사학자와 함께 창간한 학술지 '아날(Annales)'은 이후 20세기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아날 학파'의 출발점이 됐다.
학문적 업적뿐 아니라 나치 점령기에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며 저항을 실천한 점도 블로크가 프랑스 사회에서 특별한 존경을 받는 이유로 꼽힌다.
젊은 시절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았던 그는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이미 53세의 소르본 대학 교수였으나 자진해 다시 전선에 부임했다. 시몬과 결혼해 슬하에 여섯 자녀까지 둔 상황이었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한 뒤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직과 시민권적 권리를 박탈당했고 자택도 몰수됐다.
독일군의 점령이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되자 그는 1943년 레지스탕스에 합류해 저항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이듬해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인 게슈타포에 붙잡혀 1944년 6월 16일 디디에 드 포르망 근처의 벌판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총살당한다.
총살 직전 "비브 라 프랑스(Vive la France·프랑스 만세)"를 외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블로크는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한 직후 집필한 저서 '이상한 패배'를 통해 군과 정치 지도부의 무능, 그리고 사회 전반에 퍼진 패배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특히 그는 히틀러를 동경하고 프랑스의 미래를 믿지 않았던 당시 지배층의 책임을 지적하며 이 같은 분위기가 결국 독일에 협력한 비시 정권의 등장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사후 출간된 이 책은 오늘날까지 그의 대표적 저작으로 꼽힌다.
마크롱 대통령도 이날 추도사에서 이 저서를 언급하며 "패배주의적 사고방식은 지금도 존재한다"며 만연한 패배주의가 "우리 공적 삶을 서서히 잠식하는 독(毒)으로,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경고했다.
AFP는 마크롱 대통령의 후임을 선출하는 대선을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이번 헌정식이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며,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부상 속에 이번 행사가 정치적 의미도 갖는다고 평가했다.
나치에 저항했던 블로크의 정신적 유산을 통해 극우의 부상과 확산을 막아내야 한다는 우회적인 메시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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