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래
| 2026-08-13 13:53:26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최첨단 기술이 인간의 창작을 대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는 시대다. 인공지능(AI)은 이제 몇 번의 클릭만으로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고 음악까지 작곡한다.
반면 사람이 하는 일에는 불안감이 커졌다. 산업 현장에선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오류를 '휴먼 에러'라고 부른다.
하지만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13일부터 열리는 2026 타이틀 매치 '오인환 vs. 장서영: 휴먼 에러'는 '휴먼 에러'를 결함이 아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자 창작의 원천으로 바라본다.
타이틀 매치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이 매년 여는 2인전으로, 서로 다른 두 작가가 각자의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에는 개념적·참여적 작업을 해온 오인환(61)과 영상·설치 작업을 통해 질병과 노화, 죽음 등을 다뤄온 장서영(43)이 맞붙는다.
두 작가가 '휴먼 에러'를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다. 오인환은 '하나가 아닌 우리, 하나가 아닌 나'를 주제로 사회 시스템에 의도적으로 오류를 일으키는 인간에 주목한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에 질문을 던지며 개인과 집단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가 정상성과 보편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배제하는 방식에 균열을 일으킨다.
'칼군무'는 K팝의 대표적인 퍼포먼스를 소재로 한 5채널 영상이다. 5명의 댄서가 음악에 맞춰 안무를 선보인다. 이들은 '칼군무'라는 말처럼 오차 없이 동일한 동작을 반복한다.
하지만 출연자의 가슴에 장착된 카메라로 본 장면은 미세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화면들은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미세한 각도의 차이와 정지의 순간, 신체의 흔들림을 드러낸다.
오인환은 이런 차이에 주목한다. 집단의 조화와 균질성을 중시하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는 인간의 개별성을 드러내며 '하나'라는 이상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장에서 만난 오인환은 "내가 어렸을 때도 구성원이 하나가 돼야 집단이 강해진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 세대에도 똑같은 모습의 칼군무가 한국 문화의 대표 아이콘이란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애교 프로젝트'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 배우 15명이 애교를 연기하는 모습을 담은 7채널 영상 설치다. 여성에게 주로 요구돼온 행동을 남성들이 수행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몸짓과 태도가 젠더 규범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낯설게 보여준다.
장서영은 '실리콘 바니타스'를 주제로 사회가 아닌 신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오류에 주목한다. 반도체의 주요 재료인 실리콘과 삶의 덧없음을 성찰하는 미술 형식인 '바니타스'를 결합한 개념이다.
기술 문명이 완전성과 영속성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인간의 몸은 늙고 병들며 결국 죽는다. 작가는 이처럼 피할 수 없는 신체의 불완전성을 통해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선명해지는 인간의 조건을 탐구한다.
영상 작업 '폴룩스의 거울'은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한다는 내용의 전래동화 '손톱 먹은 들쥐'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정보를 학습하고 모방하는 AI와 인간의 몸에서 증식하는 악성 신생물을 겹쳐 보여주며 인간과 인간을 복제하거나 대체하는 존재 사이의 경계를 묻는다.
영상 속에서 인간과 AI의 관계는 점차 역전되지만, 작가는 인간의 고통만큼은 끝내 AI나 비인간 존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기억'은 인간이 멸종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폐병원을 홀로 돌아다니는 '자율주행 케이크'가 자신의 촛불을 꺼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을 통해 인간이 사라진 뒤 남겨진 기억과 공허를 우화적으로 보여준다.
장서영은 "최신 기술의 사용은 인간에게 전능감과 동시에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며 "인간이 시간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최신 기술 속에 살다 보니 자연스러움이 잘못된 것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참여를 통해 이뤄지는 오인환의 작업을 '살갗'의 작업으로, 몸속에서 발생하는 이질적인 감각을 다루는 장서영의 작업을 '내장'의 작업으로 비유했다. 그러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예술적 상상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작가가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비롯해 대학생·청소년 대상 전시 감상 프로그램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전시는 10월 25일까지 열리며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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