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언
| 2022-09-12 13:47:02
'나는 솔로' 남규홍 PD "사랑이요? 정의하는게 어리석은 일이죠"
'짝'·'스트레인저'·'나는 솔로' 연출…일반인 연애 리얼리티만 12년째
"사랑학 교본 같은 프로그램이 목표…모태솔로·쌍둥이 특집 해보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저희의 목표는 '나는 솔로'가 중요한 학술적인 자료로 남는 거예요. 인류의 사랑에 대한 교본, 특히 그중에도 한국인의 사랑에 대한 교본이 됐으면 좋겠어요."
10년이 넘도록 남녀의 사랑을 관찰해온 이가 있다. SBS 예능 '짝'(2011)으로 일반인 연애 예능 시대를 열고 SBS플러스·ENA '나는 SOLO('이하 '나는 솔로')'로 또 한 번 열풍을 일으킨 남규홍 PD를 지난 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만났다.
그동안 남 PD가 연출한 '짝', '스트레인저'(디스커버리 채널), '나는 솔로'에서 그가 출연진으로 만난 기(期) 수는 약 70기에 달한다. 한 기에 10명씩만 잡아도 최소 700명의 사랑법을 관찰해온 셈이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모습을 최대한 정직하게, 사실적으로 영상에 담으려고 노력한다"며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사회학, 심리학, 인간학, 생태학 등 다양한 학문에 관한 자료가 집대성돼있다"고 자신했다.
지난해 7월부터 방영돼 벌써 10기 출연진을 맞은 SBS플러스·ENA '나는 솔로'는 연애 리얼리티 예능 홍수 속에서 출연진의 진정성을 앞세워 꾸준한 화제성을 끌고 있다.
남 PD는 "결혼할 만한 상대를 소개해주는 자리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분이 명확한 분들을 찾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며 "직업이 확실하지 않은 배우 지망생 등은 인터뷰도 안 본다"고 말했다.
연예인 같은 외모와 끼를 갖춘 출연진을 섭외해 화제성을 노리기보다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솔로 남녀들의 현실적인 연애를 담는다.
출연진은 자기소개할 때부터 서로에게 결혼 계획, 자녀 계획, 재산 규모, 가치관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때는 "나 외로워", "나를 놓치지 말아 주세요" 등의 멘트를 간절하게 외친다.
출연진의 나이대도 평균 30∼40대의 결혼 적령기. 7기에서는 40대 미혼 남녀 중 높은 학력과 경제적 능력을 갖춘 '골드미스·미스터 특집'을 진행했고, 현재 방송 중인 10기는 이혼한 이들을 모은 '돌싱(돌아온 싱글) 특집'이다.
남 PD는 "앞으로 모태솔로(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를 안 해본 사람) 특집이나 쌍둥이 특집도 기획해보고 싶다"며 "외모가 같은 사람들을 모아두고 이들이 어떤 점에 끌려서 사랑하는지 관찰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냐"며 눈을 반짝였다.
결혼을 목적으로 솔로 나라에 모인 출연진은 촬영 중 본명을 공개하지 않는다. '짝'에서처럼 1호·2호라고 부르는 대신 시대별로 가장 많이 쓰인 이름 영철·영호, 영식, 영자·옥순·순자 등 가명을 부여받는다.
비슷한 이름 때문에 헷갈린다는 반응도 나오지만 남 PD는 "단순히 익명성을 위해 선정한 이름이 아니라 각 이름이 가진 대표성을 고려했다"고 짚었다.
그는 "'짝' 때는 지구에 남녀가 각각 6명씩밖에 안 남았다는 정신으로 출연진을 1∼6호로 구분했는데 '나는 솔로'에서 쓰는 가명도 마찬가지"라며 "인류의 마지막 사람들이라는 느낌으로 성별을 대표하는 이름들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남 PD는 출연진 이름 외에도 자신이 직접 쓰는 자막이 '나는 솔로'라는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보여준다고 꼽았다.
"인생은 태초부터 경이로인 일의 연속이다", "만물은 사라져간다. 조금씩 조금씩 다만 잊지 말라고 생채기를 남길 뿐", "세차게 때린 운명 앞에 폼은 잃지 마시게. 인생도 사랑도 지나고 나면, 오직 장탄식만 가득하리니" 등의 문구나 명언이 중요한 장면에 삽입된다.
남 PD는 "단순히 재미로 보는 얕은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나는 솔로'만의 특색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솔로 나라에서 출연진은 결혼에 대한 절박한 속내를 드러내고 이성의 호감을 얻기 위해 거침없이 직진한다. 1기 영호는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거절당하자 포효하듯이 울부짖고, 9기 영숙은 자신을 헷갈리게 하는 남성 때문에 눈물 콧물을 쏟기도 한다.
출연진이 솔로 나라에 머무는 시간이 4박 5일밖에 되지 않다 보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서로를 안 지 하루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저런 감정을 느끼냐'며 의아해하는 이들도 있다.
남 PD는 "물리적인 시간보다는 시간의 농도와 밀도가 더 중요하다"며 "솔로 나라에서 출연진은 오로지 사랑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서 나오는 감정의 깊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출연진도 많고, 촬영이 끝나면 대부분의 사람이 많은 것을 배워 간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솔로 나라에서 사람들은 많은 감정을 교류하고, 인간을 이해해보고, 자신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겪어요. 타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보고, 제작진하고 여러 가지 인터뷰를 하면서 몰랐던 본인의 모습을 찾기도 하죠. 며칠 동안 특정 주제에 관해서만 사고하기 때문에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고, 찾지 못했던 답이 갑자기 나올 때가 있어요."
솔로 나라에서 사랑을 찾고, 결혼까지 이어진 커플만 벌써 5쌍. 1기 영숙·영철은 방송 출연 3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고, 6기 영숙·영철 커플도 최근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의 인연을 이어주고 관찰해 온 남 PD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이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을 정의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있을까요? 누가 너무 좋다가도 갑자기 싫증 나는 게 사랑이에요. '사랑은 이렇다'고 정의해버리면 거기서 벗어나는 것들은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 돼버리잖아요. 사랑은 움직이는 겁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만큼 부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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