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망·트라우마 담은 현대극…몬테카를로 '백조의 호수'

한국 첫선 보인 마요 감독 대표작…왕자 역에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

권지현

| 2026-05-17 13:36:50

▲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몬테카를로 발레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라보라예술기획·영앤잎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라보라예술기획·영앤잎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간 욕망·트라우마 담은 현대극…몬테카를로 '백조의 호수'

한국 첫선 보인 마요 감독 대표작…왕자 역에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악마와 그의 딸이 관능적인 몸짓으로 왕과 왕자를 유혹한다. 왕비는 이를 막아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왕자는 첫사랑인 백조를 그리워하면서도 어둠과 욕망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 1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고전 동화 속 인물의 전형성을 뒤집고 다양한 욕망과 트라우마를 가진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 현대극의 정체성을 부각했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세련된 모던 발레를 보여주는 세계 정상급 컨템퍼러리 발레단이다. 특히 장 크리스토프 마요 예술감독이 1993년 수장을 맡은 이후 '신데렐라',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현대적 언어로 재해석한 레퍼토리로 호평받았다.

'백조의 호수'는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 상연됐다. 악마가 소녀에게 백조로 변하는 저주를 걸고 그녀를 사랑하는 왕자를 속여 자기 딸인 흑조와 결혼시키려 한다는 큰 줄거리는 같지만, 선악의 이분법적 구조를 타파하고 모호하며 복잡한 인간상을 등장시켰다.

추가된 설정에 따르면 악마인 '밤의 여왕'은 사실 왕과 불륜 관계이며 왕가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한 원한을 갖고 있다. 불륜에 분노한 왕비는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흑조를 잔인하게 죽이고, 왕자는 첫사랑을 빼앗긴 트라우마와 부모의 통제, 흑조의 유혹에 흔들리고 고뇌한다.

마요 감독은 무용수들에게 뒤엉킨 욕망과 관계를 "고전 발레에서의 관습적 연기 대신 '살아 있는 안무'로 표현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무용수들은 정교한 발레 동작 외에도 제스처와 표정 연기를 한껏 살렸다.

예컨대 왕자를 유혹하는 흑조와 궁중 여인들의 연기, 이에 흔들리는 왕자의 연기는 매우 노골적이고 관능적이다. 고전 버전에서는 여인들이 독무를 선보이고 왕가에 절을 하는 식이지만, 몬테카를로 버전에선 거리낌 없이 왕자를 신체적으로 희롱하는 방탕한 모습을 보인다.

인자한 모습 대신 아들을 통제하려는 왕과 왕비는 왕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위협하듯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왕의 불륜으로 복수심에 찬 왕비는 흑조를 잔인하게 여러 번 찔러 죽이는 강렬한 몸짓으로 내면을 표현한다.

왕자 역의 한국인 수석무용수 안재용은 '마요의 페르소나'라는 명성답게 객석에서도 보이는 표정 변화와 고갯짓 등의 섬세한 제스처로 이해도를 높였다. 또한 동작의 크기나 세기, 속도를 조절해 다급한 절박함이나 사랑에서 오는 기쁨의 크기를 구현했다.

몬테카를로 특유의 절제된 모던한 연출도 작품의 의미를 강화했다. 고전 발레에서 보이는 화려한 중세 유럽의 궁전은 등장하지 않으며 새하얗고 네모진 왕좌로 크게 단순화·상징화됐다.

무용수들의 복식은 제작진이 공을 들인 부분이다. 발레단 의상 담당 필립 기요텔은 "작품 전체에 스민 '야수성'의 개념이 주요한 의상 테마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특히 백조 역 무용수들의 의상에서 이 같은 의도가 잘 드러나는데, 보석 박힌 왕관과 드레스 같은 스커트 대신 거칠고 큰 깃털이 달린 짧은 원피스를 택했다. 장갑은 손가락 부분이 정말 조류의 깃털처럼 길게 돋아나 기이하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데, 기요텔은 "천상의 발레리나 대신 '동물'로서의 백조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인간은 선택할 능력이 있기에 동물과 다르다고 믿지만, 결국 우리도 왕자만큼이나 길을 잃은 존재"라며 "작품 속 모든 것은 구분이 모호하며 우리 자신의 본성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설명했다.

공연은 지난 13일 화성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했으며 16∼17일 서울 공연에 이어 오는 20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마지막 무대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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