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개 스피커로 되살린 아시아 이주의 목소리…김영은 개인전

시 9편 발음 연구해 음악으로 재구성…공간 따라 달라지는 청취 경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서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

박의래

| 2026-09-07 13:31:14

▲ 전시 전경 [AC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김영은 작가 (전남광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김영은 작가가 지난 5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6.9.7. laecorp@yna.co.kr
▲ 전시 전경 [AC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남광주=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어둠 속에서 여러 방향의 소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115개의 스피커에서는 낯선 언어의 목소리와 시를 읊조리는 듯한 리듬, 악기와 박수, 속삭임이 교차한다.

정면과 양옆에 놓인 대형 스크린 3개에는 지금 흐르는 소리가 어떤 시와 언어, 이야기에서 출발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글자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관람객은 한곳에 머무르기보다 공간을 걸으며 소리의 거리와 방향, 겹침의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김영은(46)의 개인전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이동하는 소리'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ACC 미래상 수상을 기념한 전시다.

전시 이름과 같은 제목의 신작은 아시아의 이동과 이주를 다룬 대규모 사운드 설치다.

가로 25m, 세로 60m, 높이 15m의 전시장에 115개의 스피커를 설치하고, WFS(Wave Field Synthesis·파동장 합성) 시스템을 적용했다. WFS는 여러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를 정교하게 조절해 소리가 특정 지점에서 들리는 것처럼 만들거나 관람객의 앞뒤와 머리 위를 지나가는 듯한 움직임을 구현한 시스템이다. 전시장 안을 걸으면 같은 소리도 위치에 따라 방향과 거리감이 달라진다.

작품은 전쟁과 피난, 징집과 망명, 이별 등 이동의 경험을 담은 과거의 시 아홉 편에서 출발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카자흐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와 현재 사용되지 않는 인도의 옛 언어 등 여러 언어로 쓰인 시가 대상이다.

작가는 각 시의 발음과 낭송 방식에 대한 자료 조사, 전문가 자문, 녹음을 통해 과거 음성의 단서를 모았다. 이를 해당 언어권 출신으로 이주를 경험한 작곡가들에게 전달해 각자의 해석에 따라 새로운 음악으로 구성하도록 했다.

아홉 명의 작곡가가 해석한 아홉 곡은 약 60분 동안 순환 재생된다. 각각의 곡은 목소리와 박수, 노래, 악기와 배음 등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합한다.

이 작업은 사라진 소리를 완전하게 복원하려는 시도라기보다, 불완전하게 남은 기록에서 출발해 현재의 소리를 만드는 작업에 가깝다.

지난 5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영은은 "전쟁과 피난, 국가에 의한 징집, 망명, 거리로 인한 이별 등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 이주의 경험을 겪어왔다"며 "현대적인 의미의 이주 경험과 과거 시에 나타나는 경험들이 어떻게 공명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115개 스피커를 동원한 이 작품에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스피커와 공간을 모두 걷어낸다면 사람의 목소리만 남기고 싶다"며 "악기도 아름답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목소리"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이번 신작 외에도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연구 아카이브와 과거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조소를 전공한 김영은은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리와 청취를 탐구해 왔다. 특히 근대화와 식민화, 군사주의, 이주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듣고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살피며, 시각 중심의 역사에서 밀려난 서사를 소리로 다시 불러낸다.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작가에 선정됐으며 2017년 송은미술대상 대상과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영예상 등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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