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 '발견' 아닌 '만남'…아메리카 원래 주인이 쓴 미국사

네드 블랙호크 '선주민의 쓴 미국사' 출간

고미혜

| 2026-04-22 13:03:56

▲ '집단학살 기념을 멈추라'는 팻말이 놓인 미국의 콜럼버스 동상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신대륙 '발견' 아닌 '만남'…아메리카 원래 주인이 쓴 미국사

네드 블랙호크 '선주민의 쓴 미국사'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미국의 역사는 대개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서부터 서술된다. 황무지에 정부를 세운 청교도, 서부에 정착한 개척자, 대서양 연안에 몰려든 유럽인 이민자 등이 미국사의 주인공이었다. '아메리카'라는 지명조차 이탈리아 탐험가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유럽인들이 오기 한참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터를 잡고 살았던 '선주민'(先住民)의 이야기는 미국사에서 오랫동안 소외됐고, 때론 일방적으로 폄훼됐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은 선주민을 '무자비한 인디언 야만인'(merciless Indian savages)이라고 표현했다.

네드 블랙호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쓴 책 '선주민이 쓴 미국사'(원제 'The Rediscovery of America')는 제목 그대로 선주민의 시각에서 다시 쓴 500여 년의 미국 역사다.

블랙호크 교수는 네바다주 서부 티모악 부족 출신으로, 유럽 정착민 중심으로 서술된 기존 미국사를 비판하고 선주민의 역사를 미국사의 중요한 축으로 되살리는 데 힘써왔다.

이 책 역시 대부분의 기존 미국사 책처럼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부터 시작하지만, 유럽인들의 신대륙 '발견'이 아니라 선주민과 유럽인들의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먼저 살던 이들과 새로 온 이들이 미국 땅에서 수백 년간 '상호작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미국사를 재구성했다.

선주민의 시선에서 본 초기 미국의 역사는 잔혹한 폭력의 역사다.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에서 550명을 노예로 삼았는데, 약 200명이 에스파냐 도착 전에 사망했고, 죽은 이들은 바다로 던져졌다. 수많은 선주민이 노예제도와 과로, 기근, 유럽의 병균 탓에 숨진 이 시기를 저자는 "아메리카 선주민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때"라고 표현한다. 1492년에서 1776년 사이 북아메리카 총인구는 약 700만∼80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미국사의 핵심 키워드인 '노예제'에 있어서도 선주민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노예제의 역사는 백인과 흑인의 구도로 서술되지만, 16∼17세기 아메리카 전역에서 100만 명에 가까운 선주민이 노예가 됐고 대서양 건너편으로 팔렸다. 1715년까지 미국 찰스턴에서 수출한 인디언 노예가 서아프리카에서 수입한 아프리카인 노예보다 많았다고 이 책은 전한다.

미국 독립혁명과 건국 과정에서 부각되지 못했던 선주민들의 존재감도 저자는 되살려냈다.

영국이 식민지 미국에서 시행했던 차(茶) 과세에 대한 반발로 벌어진 '보스턴 차 사건' 등이 독립전쟁의 불씨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유럽계 정착민과 서부 지역 선주민들의 충돌이 기원이 됐다고 말한다. 선주민과의 평화를 유지하려던 영국 식민정부와 선주민의 땅을 차지하려는 정착민들 간의 갈등이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디언을 배제하고 혁명을, 혁명의 기원과 과정 및 그 유산을 이해하는 것은 한 손으로 박수를 치는 것과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는 미국 건국 이후 선주민들이 억압에 저항하며 주권과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도 다양한 사료와 함께 서술됐다.

저자는 서문에서 "배제와 오해를 키워온 '발견'이라는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 미국사를 다시 생각할 시점"이라며 "인종 분쟁, 기후 위기, 미국 내부 혹은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과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새로운 개념과 접근 방식과 결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애써 모른 척했던 선주민들의 목소리로 미국의 역사를 다시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알던 미국사가 반쪽짜리였음을 깨닫게 된다.

2023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그해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분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책과함께. 최재인 옮김. 9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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