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 2026-06-11 11:00:03
금빛으로 감싼 부처의 사리…나라와 왕실 지키던 황룡사 이야기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황룡봉불' 특별전
사리장엄 유물 322점 한자리…"탑 창건부터 연구까지 이어진 역사"
조사·연구 거쳐 복원품도…'김충' 등 작업자 추정 이름 새로 찾아
(경주=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명실공히 신라 최고의 사찰로 여겨지는 황룡사(皇龍寺) 중심에는 9층 목탑이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이제는 법등(法燈·부처 앞에 올리는 등불)이 꺼지고, 옛 기억만 남은 탑 자리에는 거대한 돌이 남아있다.
황룡사 터가 세간의 이목을 끈 건 1964년 12월이었다. 도굴꾼들은 탑의 중심 기둥이 놓이는 심초석(心礎石)의 윗돌을 들어내고 귀한 유물을 훔쳐 갔다.
약 2년이 지난 뒤 도굴꾼들은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다 덜미가 잡혔다. 사리 장치를 비롯한 유물은 돌아왔으나 상당 부분이 파손돼 있었고, 원래 모습을 알기 어려웠다.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하나였던 황룡사 목탑이 품은 기억은 어떨까. 반세기에 걸친 발굴 조사와 과학적 분석, 복원 과정을 거쳐 실마리를 찾은 이야기가 공개된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을 맞아 이달 12일부터 선보이는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황룡봉불(皇龍奉佛)'에서다.
이번 전시는 황룡사 목탑의 심초석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공간인 사리공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유물을 조명한다.
사리공에서 출토된 금동 사리함, 목탑을 중수(重修·낡고 헌것을 손질하고 고침)하면서 남긴 기록인 금동 찰주본기(刹柱本記) 등 총 322점을 모았다.
당대 불교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사리갖춤(사리장엄구)에 집중한 전시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은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구를 탑의 창건과 중수, 봉안과 수습, 보존과 연구 과정이 이어져 온 하나의 역사로 다루고자 했다"고 10일 소개했다.
전시는 호국의 상징으로 여겨진 황룡사 9층 목탑을 비추며 시작된다.
황룡사 목탑의 심초석은 동서로는 최대 435㎝, 남북 최대 300㎝에 이르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전체 무게가 약 30t(톤)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공은 심초석 윗면 중앙에 있다.
전시를 기획한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최근 조사 결과, 사리공 내부를 금동 판으로 장엄해 하나의 거대한 사리함처럼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645년 목탑을 세울 당시 만든 사리공 내부 모습을 복원해 보여준다.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8명의 신장(神將)은 금동 판의 안쪽에 새겨져 있는데, 사리를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도굴 사건과 압수, 조사를 거쳐 2015년 보물로 지정된 찰주본기(정식 명칭은 보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는 전시의 핵심 유물이다.
찰주본기는 4장의 금동 판을 연결해 만든 상자 형태다.
금동 판에는 총 74행, 900여 자가 새겨져 있는데 경문왕(861∼875)이 왕위에 있던 872년 황룡사 목탑을 중수하면서 남긴 기록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지금의 왕께서 즉위하신 지 11년 되는 함통 신묘년(871)에 그 (탑)이 기울어진 것을 한스럽게 여겨…."('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 2면 내용 중)
유물을 조사하며 새로운 이름을 밝혀낸 점은 주목할 만하다.
'찰주본기'가 새겨진 사리함에는 관료, 승려 이름과 소속이 기록돼 있는데, 박물관은 '김충'(金忠), '연장'(連長) 등 4명의 이름을 새롭게 찾아냈다.
박물관 측은 "사리함에는 61명에 이르는 이름이 남아있다"며 "목탑 중수가 왕실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 장인이 함께 참여한 국가적 사업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중화(仲和) 3년' 글자가 새겨진 사리장엄구를 조사한 성과도 공개된다.
원통 모양에 꼭지가 달린 뚜껑이 특징인 이 유물은 황룡사 목탑 사리공 안에서 발견됐으나, 원래는 다른 사찰의 탑에 봉안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은 "제작 시기로 보아 872년 이후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며 "황룡사 사리장엄이 한 번에 완성된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추가되고 재구성됐음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황룡사뿐 아니라 통일신라의 사리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사찰의 유물도 전시된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의 삼층석탑 안에 있었다고 전하는 사리 항아리는 9세기 중엽 신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의 유물로, 1966년 도굴됐다가 되찾았다.
몸체에는 가로, 세로로 칸을 내어 7자씩 총 38행의 글자를 새겼는데 항아리가 민애왕(재위 838∼839)을 위해 건립된 석탑과 연관돼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전시에서는 납석으로 만든 항아리와 금동 사리함을 처음으로 함께 선보인다.
합천 해인사 일주문 인근의 3층 석탑에 봉안돼 있던 탑지석(塔誌石·탑의 건립 이유 등을 기록한 돌), 높이가 7.5㎝에 불과한 작은 탑 157점 등도 눈길을 끈다.
윤상덕 관장은 "이번 전시가 오랜 시간 땅속에 간직돼 있던 신라의 염원과 장엄의 세계를 함께 나누는 뜻깊은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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