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연재
| 2026-10-04 12:00:11
(도쿄=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도쿄 미나토구의 아자부다이 힐스는 도쿄 도심 재개발의 무게중심을 초고층과 규모 경쟁에서 녹지·보행·체류 경험으로 옮긴 상징적 프로젝트로 평가된다.
주거와 업무, 상업시설을 한데 모으는 기존 복합개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정원과 산책로, 미술관, 국제학교, 의료시설, 호텔과 식음료 공간을 일상의 동선 속에 촘촘히 섞어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도시의 역할을 '일하고 소비하는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살아가는 곳'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 건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풍경'
아자부다이 힐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초고층 빌딩보다 그 아래 펼쳐진 풍경이다.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저층부 건축 사이로 광장과 보행로가 펼쳐지고, 그 틈을 나무와 풀, 정원이 끊임없이 메운다. 거대한 건물을 먼저 세우고 남은 공간을 뒤늦게 조경한 느낌과는 다르다. 사람이 걷고 머무를 공간과 녹지를 먼저 그리고, 그 위에 건축을 얹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모리빌딩이 아자부다이 힐스에 내건 개념은 '모던 어번 빌리지'(Modern Urban Village)다. 약 8.1㏊ 부지에 업무·주거·상업·호텔·문화시설과 국제학교 등을 집약하면서도 약 2만4천㎡를 녹지로 확보했다.
중앙광장만 약 6천㎡에 달한다. 지상부를 부드럽게 감싸듯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형 저층부는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가 디자인했다.
아자부다이 힐스의 진짜 분위기는 숫자나 통계보다 현장에서 직접 걸어봐야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멀리서부터 유난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차 한 대가 다가와 카메라를 들었더니, 한 여성이 몰고 온 벤틀리였다.
반려견과 함께 천천히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고급 주거지역 특유의 여유와 차분함이 공간 전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아자부다이 힐스는 누군가에게는 일부러 찾아오는 쇼핑과 관광의 목적지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집 앞 산책길이자 일상이 이어지는 동네였다.
◇ 향기와 브런치, 머무는 경험을 팔다
상업시설을 둘러보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향기'였다. 향수는 물론 실내 공간에 향을 더하는 방향 제품과 각종 향료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장이 예상보다 많았다. 독일의 리나리,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출발한 테아트로 등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향기 전문 브랜드도 눈에 띄었다. 한 매장에서는 작은 전자기기에서 향이 흰 안개와 함께 쉼 없이 퍼져 나왔다. 단순히 상품을 진열해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후각까지 소비 경험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다.
'체류의 경험'은 음식에서도 이어졌다. 아자부다이 힐스 맞은편 오란다 힐스 모리타워에 있는 '라테 그래픽'을 찾았다. 이 건물 역시 모리빌딩이 개발한 곳이다.아자부다이점에서 '치킨 파르메산'과 '더블 스뫼레브뢰드 런치'를 맛봤다. 스뫼레브뢰드는 호밀빵 등에 여러 재료를 올려 먹는 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다.
이곳에서는 생햄과 마스카르포네, 트뤼프 스크램블 등을 활용한 여러 종류의 스뫼레브뢰드를 맛볼 수 있다. 호주 멜버른의 카페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곳은 음식의 완성도뿐 아니라 머무는 공간의 분위기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인상이었다.
라테 그래픽 2층에서는 아자부다이 힐스 저층부 전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맞은편에서 바라보면 이 개발이 무엇에 공을 들였는지가 더욱 선명하다. 건물 지붕까지 초목이 빼곡히 덮여 있고, 정원 사이로 식물 관리를 위한 통로가 이어진다. 저층부 옥상까지 녹화하고 과수원까지 조성한 모습은 단순한 장식용 조경과는 거리가 멀다.
◇ 머물 이유를 설계한 도시…한국의 현실과 비교
정원과 광장, 산책로는 사람의 움직임을 이끌고 그사이 상점과 음식점, 문화시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자부다이 힐스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을 얼마나 편안하게 오래 머물게 하느냐에 있었다.
녹지와 휴식에 음식, 문화, 쇼핑을 더해 사람들이 걷고 쉬며 시간을 보내는 '도시의 경험'까지 설계했다. 빌딩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 이유를 만드는 것, 아자부다이 힐스에서 모리빌딩식 개발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러한 철학은 최근 신도시와 도심을 가리지 않고 '공실 무덤'의 늪에 빠진 한국의 상업 부동산 시장에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의 대형 재개발 프로젝트는 여전히 '쪼개기 분양'을 통한 단기 수익 창출에 매몰돼 있다.
시행사가 상가를 쪼개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고 떠나면, 전체 공간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매장 구성은 실종되고 고분양가에 맞춘 살인적인 임대료만 남아 상인들의 고통을 가중한다. 거리 곳곳에 임대 현수막만 나부끼는 우울한 풍경이 반복되는 이유다.
반면 모리빌딩은 상가를 일반에 분양하지 않고 100% 직접 소유하며 철저히 통합 관리한다. 단기적인 분양 수익을 포기하는 대신, 공간의 정체성에 맞는 브랜드를 꼼꼼히 선별하고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려 전체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텅 빈 상가가 방치된 우리의 현실과, 굳이 상가를 팔지 않아도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입점하려 줄을 서는 아자부다이 힐스의 활력은 결국 공간을 대하는 '비전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 셈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10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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