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번째 여성감독의 책상에 앉는 순간 '오마주'가 시작됐죠"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오마주: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

한미희

| 2022-05-01 11:59:29

▲ 대담에서 이야기하는 신수원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오마주'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영화 '여판사'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전주대담에 참석한 신수원, 부지영, 윤가은 감독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2번째 여성감독의 책상에 앉는 순간 '오마주'가 시작됐죠"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오마주: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

(전주=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1960년대에 활동했던 여성 감독의 방, 그분의 책상에 앉아 있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게 '오마주'를 만든 계기가 됐죠."

신수원 감독의 신작 '오마주'는 어렵게 만든 세 번째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새로운 시나리오 작업마저 제대로 되지 않아 실의에 빠져 있다가 1960년대 여성 감독의 영화를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게 중년 여성 감독 지완(이정은)의 이야기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고군분투하는 30대 후반 여성 지완(박현영 분)의 이야기를 담았던 신 감독의 데뷔작 '레인보우'(2010)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는 '레인보우' 이후 두 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방송국의 제안을 받고 만든 다큐멘터리 '여자만세'(2011)가 있다. 카메라를 든 여자들의 이야기 속에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과 두 번째 여성 감독 홍은원, 그리고 이 두 사람과 함께 했던 편집 기사 김영희가 있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섹션에서 마련된 미니 특별전 '오마주: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에서는 '여성 감독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 있는 세 편의 작품과 함께,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가 상영되고 있다.

1960년대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 이야기를 담은 '여판사'(1962)는 신 감독의 작품들 사이에서 중요한 고리가 된다.

지난달 30일 저녁,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여자만세'와 '여판사' 상영 이후 마련된 '전주대담'에서 신 감독은 앞선 세대 여성 감독들의 활동이 단절된 데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홍 감독은) 15년이나 영화 현장에서 일했고 데뷔작인 '여판사'는 당시 관객이 20만 명이나 들었다고 하는데 한동안 필름 존재조차 확인되지 않았었다"며 "찬란했던 시절을 보냈던 필름 메이커들이 왜 이렇게 사라졌을까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자만세'에서는 짧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언젠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고, 이후 '젊은이의 양지'(2020) 후반 작업을 하며 심적으로 지쳐있던 신 감독은 '오마주' 아이템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그분의 사라진 필름을 내 영화 속에서 세상에 다시 드러내는 것이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그렇게 사명감이 있는 사람은 아닌데,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또 "'오마주' 영화 속에서는 시나리오를 쓰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오마주' 시나리오는 굉장히 편하게 잘 써졌다"며 "당시 '여판사' 필름이 발견된 게 힘이 됐다"고 했다.

대담에는 부지영, 윤가은 감독이 함께 참석해 '한국에서 여성 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영화 '우리들', '우리집' 등으로 국내외에서 호평받은 윤가은 감독은 "현장에 있을 때 '내가 여기서 소리를 좀 높이면 여자 감독이라서 더 신경질을 냈다고 생각할까?' 하는 식의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도 뭔가 그 속에서 나는 전투를 치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신 감독 역시 "유령 취급을 받는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남자들보다 몇 배를 더 노력해야 봐준다"며 "박남옥 감독님이나 홍은원 감독님은 정말 칼 없이 전쟁터에 서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답했다.

여성 감독이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만드는 영화는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실도 꼬집었다.

부 감독은 "남자 감독들한테는 '너는 왜 남자 이야기만 하느냐'고 질문하지 않으면서, 여자 감독들에게는 '너는 왜 여자 얘기만 하냐'고 물어보는 건 창작자를 위축시키는 부당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나온 젊은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보면서 여성 감독이 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나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와 새로운 서사를 하는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영화 현장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분명한 변화도 있었고, 희망을 보고 있다고도 했다.

신 감독은 "여자는 힘이 없어서 안 된다고 하던 촬영, 조명 분야에 여성 스태프가 늘어난 게 큰 변화"라고 했다. 윤 감독은 "초등학교에 가면 특히 여자 친구들이 와서 감독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그런 친구들이 아주 많고 질문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명확해서 놀랍다"고 전했다.

부 감독은 "영화만 고집할 필요 없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웹드라마, 유튜브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 창작자들을 인정해주고 응원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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