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지철
| 2022-07-19 11:49:50
들쑥날쑥 제주 렌터카 요금 흑역사…이번엔 개선될까?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114개 제주도 렌터카 업체 대표들이 19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고객만족 서비스를 위한 자정 결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제주도에 신고한 대여약관을 철저히 준수하고 과다한 요금이 아닌 적정한 요금을 받도록 하겠다"며 고객 만족 친절서비스와 교통사고 발생 시 수리비 과다 청구 자제, 취소 시 신속 예약금 환불처리와 수수료 과대 청구 자제 등을 약속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위기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현실화하면서 비싼 항공료와 렌터카 요금 탓에 제주 여행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성수기와 비성수기 등 시기에 따라 할인 폭이 '들쑥날쑥' 변하는 렌터카 요금을 '바가지요금'이라고 불평불만을 내놓는다.
제주 렌터카 요금 문제의 근원은 무엇일까.
과당경쟁과 호객행위, 바가지요금 등 제주 렌터카를 둘러싼 각종 논란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987년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개정됐다.
개정안의 골자는 자동차대여사업(렌터카업)을 기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것이다.
자율등록제 실시로 인해 전국적으로 렌터카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어 법 개정을 통해 1997년 대형 렌터카 업체의 전국단위 영업을 가능하게 했고, 2002년에는 차량대여업 등록기준을 종전 100대에서 50대로 완화해 진입 문턱을 낮췄다.
국내 최고의 관광지 제주에 렌터카 업체와 차량이 늘어나는 건 불 보듯 뻔했다.
1987년 2개 업체 105대에 불과하던 도내 렌터카는 ▲1991년 6개 업체 943대 ▲2001년 38개 업체 4천127대 ▲2011년 71개 업체 1만5천517대 ▲2018년 129개 업체 3만2천612대 ▲2020년 114개 업체 2만9천658대 등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문제는 렌터카 업체 난립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인해 제주의 관광 이미지를 흐리는 불법·편법 운영이 해마다 반복됐다는 데 있다.
렌터카 사업 초기에는 가격을 속여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는 일이 허다했지만, 경쟁이 심해지면서부터 무리하게 가격을 낮춰 고객을 유치하는 '제 살 깎아 먹기'식 영업 형태로 이어졌다.
대형업체의 과도한 할인 영업전략으로 인해 지역 영세업체들의 경영난이 심해지고, 서비스 질도 떨어졌다.
렌터카 업체들은 비수기에 70∼80% 할인된 가격으로 영업을 하다 성수기에는 요금을 대폭 올려 비수기 때의 영업손실을 만회하려 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급기야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첫해인 2006년 7월 외지에 본사를 둔 대형 렌터카 업체의 영업활동에 제동을 걸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의 특례에 관한 조례'를 입법예고하고, 제주도에 본사를 둔 업체만 렌터카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건설교통부와 전국의 렌터카 업체들이 즉각 반발했다.
소송전으로 이어졌고, 대법원은 2007년 12월 '제주특별법의 위임 범위를 벗어난 과도한 규제'라며 해당 조례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렌터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제주도는 2008년 다시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우선 차량대여업 등록기준을 50대에서 100대로 올려 렌터카 사업 등록 기준을 강화했다.
이어 렌터카 업체들이 원가 계산에 따라 각각 자율적으로 산출한 적정 요금을 도에 신고하도록 하고, 신고한 요금에 따라 할인 또는 할증 없이 연중 동일하게 받도록 가격 안정을 꾀했다.
또 이 가격을 홈페이지와 사무실 등에 게시하도록 하는 등 일명 '요금 신고제'와 '대여가격 표시제'를 연이어 시행했다.
'지역 업체 보호'와 '가격 안정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렌터카 업체의 일탈과 허술한 조례 탓이다.
서울에 본사를 둔 대형 렌터카 업체가 다른 업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가격을 신고해 영업하면서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게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장경제 체제에 따라 민간이 자율적으로 요금을 정해야 하는데, 왜 행정이 관여하느냐'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결국, 도는 렌터카 업체가 신고 요금보다 비싸게 받지는 못하지만, 비수기에 자율적으로 요금을 할인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연중 일정한 요금을 받도록 한 기존 '요금 신고제'는 유명무실하게 됐다.
렌터카 요금은 다시 요동쳤다.
성수기, 비성수기 등 시기에 따라 할인 폭이 들쑥날쑥했다.
비수기에는 초저가 가격이 형성되다가도 성수기에는 신고한 요금에 가까운 가격이 책정되면서 널뛰기 요금 논란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비수기에 제주를 여행한 관광객들이 성수기에 다시 제주를 찾았을 때 5배 이상 오른 렌터카 요금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제주도는 또 지난 2018년 2월 28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 개정에 따라 렌터카 수급조절 권한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아 일명 '렌터카 총량제'를 단행했다. 렌터카 증가가 도심 교통난을 불러일으키는 주범 중 하나로 인식되면서 3만2천여 대의 렌터카를 2만5천 대 수준으로 줄여나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각에서는 렌터카 가격을 올리는 주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가 있는데도 공급을 억제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결국 총량제는 렌터카 업체들이 제기한 소송에 제주도가 패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총량제에 따라 진행하는 제주의 자동차대여사업 수급조절계획은 오는 9월 20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도는 8월 중으로 자동차대여사업수급조절위원회를 열어 렌터카 총량제 운영 연장 여부와 자율 감차 목표를 재검토할 예정이다.
제주 렌터카 요금 문제는 렌터카 업체들의 생존과 관광객의 여행 편의, 제주의 교통환경 등 여러 가치가 얽힌 복잡한 문제다.
이 탓에 도내 114개 제주도 렌터카 업체들이 적정한 요금을 받겠다며 실시한 '자정 결의대회'가 큰 의미를 띤다.
과연 이번에 이들의 결의가 예민한 렌터카 요금 문제를 잡고 관광객의 여행 편의에 일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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