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 2026-06-14 11:40:18
황금빛 건초 흩날리는 무대, 감각 깨우는 '한여름 밤의 꿈'
알렉산더 에크만 안무·발레 도르트문트…LG아트센터 서울서 14일까지
꿈과 현실 경계 허물며…북유럽 하지 축제 재현한 현대발레
(서울=연합뉴스) 조윤희 기자 = 무대 위로 쏟아진 환한 조명 아래, 황금빛 건초더미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극장의 공기를 단숨에 바꿔놓았다.
무용수들은 바짝 마른 풀 속을 거침없이 미끄러지고, 밟고, 뒹굴며 온몸으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거대한 놀이터로 변모한 무대 위에서 건초를 허공으로 세차게 휘두르는 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몸짓은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며 강렬한 포문을 열었다.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홀에서 개막한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의 '한여름 밤의 꿈'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대발레의 매혹적인 세계를 펼쳐 보였다.
이번 공연은 2015년 로열 스웨덴 발레에서 초연된 알렉산더 에크만의 대표작이자, 한국 초연 무대로 개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특히 독일 현대 발레의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발레 도르트문트'의 첫 내한 공연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파격적인 연출과 재치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에크만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과 다르게, 자신의 고향 스웨덴에서 어린 시절 경험했던 하지 축제의 기묘하고 낭만적인 기억을 무대 위에 그려냈다.
작품의 모티프가 된 '하지 축제'는 백야 현상 속에서 여름의 절정을 기념하는 스웨덴의 전통 명절이다. 1년 중 낮이 가장 긴 6월 19∼25일 사이 사람들이 모여 저물지 않는 밤을 지새우는 하지는,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만큼이나 성대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품은 지극히 현실적인 축제의 즐거움과 환상 속 악몽이 교차하는 극적 구성을 통해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켰다.
1막이 시작되면 '꿈꾸는 남자'가 잠에서 깨며 현실 속 하지 축제의 풍경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관객들은 마치 축제에 직접 참여한 듯한 착각을 할 만큼 생생한 현장감에 휩싸이게 된다.
무대 위에선 축제에서 마주할 수 있는 여러 광경이 쉴 새 없이 교차했다.
서로를 반갑게 안아주는 친구들, 다정하게 입을 맞추는 연인들, 만찬 자리에서 술에 취해 점차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이 난장판 속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남기는 인물 등 무용수들이 표현해내는 익살스러운 순간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밤이 깊어질수록 극의 분위기는 반전을 맞이했다. 1막과 마찬가지로 침대에 누운 '꿈꾸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2막은 낮의 질서가 무너지며 몽환적이고 기이한 풍경으로 이어진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마법처럼 펼쳐지는 장면들은 현실과 아름다운 악몽, 그 경계를 흐리며 환상적인 무질서를 선사했다.
이 황홀한 여정을 완성한 것은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음악의 힘이었다.
스웨덴의 싱어송라이터 한나 톨프가 무대 위에서 직접 라이브로 소화해낸 음색은 작품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와 톨프의 신비로운 목소리는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절묘하게 결합하며 극에 몰입감을 더했다.
지극히 진부할 수 있는 일상의 풍경을 황홀하면서도 오묘한 무질서로 바꿔 놓은 감각적인 무대에, 객석은 마법 같은 북유럽의 여름밤에 홀린 듯 긴 여운이 담긴 환호로 가득 찼다. 공연은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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