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오케스트라로 빚어낸 한강의 문장…국립합창단 '눈물상자'

한강 동화 원작의 창작 음악극…무대서 구현한 '어른을 위한 동화'
문장을 감각으로 번역한 박천휘의 음악…최은영·김승대 등 열연도

임순현

| 2026-08-15 11:44:45

▲ 관객에게 인사하는 '눈물상자' 출연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합창단의 광복절 기념음악회 '눈물상자'의 출연진이 공연을 마치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6.08.14 hyun@yna.co.kr
▲ [국립합창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천휘 작곡가 [국립합창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14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국립합창단의 광복절 기념음악회 '눈물상자'는 한강 작가의 문장을 합창과 오케스트라의 호흡으로 다시 빚어낸 무대였다.

이날 초연된 '눈물상자'는 한강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국립합창단의 창작 음악극이다. 남보다 자주 눈물을 흘려 눈물단지라 불리는 외톨이 '아이'가 눈물을 모으는 '눈물상자 아저씨'를 따라나섰다가 평생 울지 못한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민인기 국립합창단 단장의 지휘에 맞춰 합창단원과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한강 원작의 문장이 품고 있던 감정의 구조를 합창의 언어로 재구성했다. 작품을 읽는 방식에서 듣는 방식으로 바꿔 놓았다.

무엇보다 이날 공연은 한강 작가의 원작을 단순한 소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정서의 골격'이라는 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원작의 성격을 아이의 울음으로 시작해 침묵과 억눌림을 통과한 뒤 마침내 목소리를 회복하는 서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의 박천휘가 작사·작곡한 음악은 문학적 문장을 '설명'하지 않고 '감각'으로 번역하는 데 주력했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는 노래와 연주를 통해 인물의 감정을 대신 말하기보다는, 감정이 스며드는 속도와 여백을 무대 위에서 조절하는 역할에 집중했다.

공연의 시작을 알린 '눈물상자 서곡'부터 마지막 곡 '멈추지 않는 눈물'까지 눈물은 단지 슬픔의 신호가 아니라, 세상을 깊이 느끼는 감각이라는 원작의 문제의식을 천천히 짚어냈다. 관객은 합창의 밀도로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을 체감하면서, 동시에 그 눈물이 왜 누군가에게 '오해'를 갖게 하는지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눈물단지'로 불리며 외톨이로 살아가는 주인공 '아이'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와 '마틸다'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어린이 배우 최은영이 맡아 열연을 선보였다. 울음을 표현하되 과장하지 않는 최은영의 연기는 마치 한강 특유의 섬세하고 시적인 문장의 결을 닮은 절제의 모습이었다.

'눈물상자 아저씨'의 등장은 무대의 온도를 바꾼다. 세상을 떠돌며 눈물을 모아왔지만 정작 자신의 눈물은 한 번도 흘려보지 못한 인물의 모순이 합창단의 화음으로 절묘하게 표현됐다. 배우 김승대가 그린 눈물상자 아저씨의 모습은 뜨겁거나 냉혹하기보다, 오래 견뎌온 공백을 조심스럽게 드러내는 쪽에 가까웠다. 눈물상자가 단지 눈물을 수집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흔적'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하이라이트 장면도 설득력 있는 연기로 표현해냈다.

국립합창단 단원인 베이스 길은배가 맡은 '할아버지'는 낮고 단단한 음색을 통해 오랫동안 억눌려온 감정을 말 대신 울림으로 전달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신소현도 문장과 음악의 경계를 매끄럽게 이어가며 한강 문장의 사유가 무대 위에서 끊기지 않도록 도왔다.

다만 원작 동화를 미리 읽지 않은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공연이었다. 작품의 서사가 배우들의 대사와 함께 노래로도 전달되다 보니, 실시간 자막 없이는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향후 재공연 때는 무대에 자막을 추가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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