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수
| 2026-07-06 11:36:58
"'병인양요 아닌 나르발호'…韓佛 첫 만남의 역사 다시 쓰다"
'나르발호 사건' 발굴·연구한 파리시테대 피에르 에마뉘엘 후 교수
"수교보다 35년 앞선 1851년 조선과 프랑스 첫 공식 접촉…갈등 아닌 인도주의의 역사"
나주 '첫만남기념관' 개관·전시회·신간 출간으로 연구 성과 확산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1851년 조선 남쪽 바다 비금도에서 우연한 표류가 한불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나르발(Narval)호 사건'은 충돌과 갈등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 했던 인도주의적 첫 만남이었죠."
나르발호 사건을 발굴해 '조선과 프랑스의 첫 공식 만남'으로 재조명한 프랑스 파리시테대학교 한국학과 피에르 에마뉘엘 후 교수는 지난 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올해는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를 맺은 지 140주년이 되는 해다. 1886년 양국은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공식 외교 관계를 시작했지만, 그보다 35년 앞서 이미 두 나라 사람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나르발호 사건은 1851년 4월 2일 전라도 나주목 관할 해역인 현재의 신안군 비금도 인근에서 프랑스 고래잡이배 '나르발호'가 좌초하면서 시작됐다.
말도 통하지 않은 프랑스 선원들과 조선 관리들은 손짓과 그림, 그리고 필담으로 소통했고, 조선은 이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일부 선원들은 구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작은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상하이로 향했다. 나침반만 의지한 채 닷새 만에 상하이에 도착한 이들은 프랑스 영사 몽티니를 찾아가 조선에 남아 있는 동료들의 구조를 요청했다.
몽티니는 김대건 신부가 1846년 제작한 조선 전도와 영국 해군 장교가 만든 지도를 활용해 같은 해 5월 1일 비금도를 찾아냈다.
나주 목사는 몽티니 일행을 위해 만찬을 마련했고, 다음 날에는 몽티니가 자신의 배에서 답례 만찬을 열었다. 당시 이 지역은 지금의 신안군이 아니라 조선시대 나주목 관할이었다.
후 교수는 "양측은 함께 술을 마셨고 이것이 조선인과 프랑스인이 함께 술을 나눈 첫 기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사건이 갈등이 아닌 교류의 역사라는 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후 교수의 연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5년 프랑스 국립 도자기박물관 특별전에서 그는 '1851년 비금도에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붙은 옹기 술병 두 점을 발견했다.
이 술병은 몽티니가 1856년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나주 목사가 선물한 유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후 교수는 "평범한 술병처럼 보였지만 한불 첫 만남의 역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유물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술병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불 수교 140주년 특별전의 첫 전시 유물로 소개되고 있다.
후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중국 베이징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당시 중국사를 전공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국사로 이어졌다. 그는 "한국에 관심이 생겼고 끝까지 공부해 보고 싶었다"며 중국사와 한국사를 결합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여년간 이어진 그의 연구는 최근 출판과 전시, 기념관 조성이라는 성과로 확장되고 있다.
나주시는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6월 20일 '첫만남센터'와 '1851 한불 첫만남기념관'을 개관했다. 후 교수는 지난 1일 기념관을 찾았다.
그는 "학자로서 제 연구를 바탕으로 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후 교수는 지난 5월 나르발호 사건을 소재로 한 만화 '나르발호 표류기'를 출간했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포경선 나르발호의 조선 표류기'를 단행본으로 펴냈다.
또 19세기 프랑스의 대조선 정책을 다룬 저서도 올해 말 고려대학교 출판부에서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프랑스에서 한국학의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후 교수가 재직 중인 파리시테대학교 한국학과는 정규직 교수 9명을 둔 유럽 최대 규모의 한국학 교육기관이다.
2020년 이후에는 한국학과 입학 지원자가 2천 명에 이를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은 대부분 한류를 계기로 한국학을 선택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한국 문화 자체에 더 큰 흥미를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그의 연구는 김대건 신부 평전으로 옮겨가고 있다. 가제는 '거룩한 브로커 김대건'(The Holy Broker: Kim Dae-geon).
그는 "기존의 성인전과는 다른 학술적 평전을 쓰고 싶었다"며 "당시 동아시아 국경과 사람들의 이동이라는 더 큰 역사 속에서 김대건 신부를 조명하려 한다"고 말했다.
후 교수는 나르발호 사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세계화가 후퇴하고 자국 중심주의가 강해지는 시대일수록 상대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며 "나르발호 사건은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역사"라고 말했다.
또 "조선은 흔히 쇄국정책만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표류민을 보호하고 송환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며 "나르발호 사건은 당시 조선 사회가 외국인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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